오피니언 사설

군의 총체적 기강 해이에 식은땀 날 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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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예상하고도 대비하지 않은 태만(怠慢).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감사 결과 드러난 우리 군 지휘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작전사령부, 해군 제2함대사령부 등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이후 전술토의 등을 통해 북한이 잠수함(정)을 이용해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은밀히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도 2함대사령부는 잠수함 대응 능력이 부족한 천안함을 배치한 채 대잠 능력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합참과 해작사도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건 발생 며칠을 앞두고 2함대사령부는 북한 잠수정과 관련한 정보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건 발생 직후의 대응에도 곳곳에서 문제점이 있었다. 예컨대 2함대사령부가 사건 발생 직후 늑장 보고를 했고 보고 내용도 지침을 어겨가며 왜곡했으며 합참도 사건 보고와 관련기관 전파에 늑장을 부리거나 사건 발생 시간을 임의로 왜곡해 보고했다고 한다. 국방부와 합참은 적절한 전투 대응태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 밖에 언론 발표 과정에서도 잘못된 최초 사건 발생시각 발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건 초기 10분 동안의 열상감시장치(TOD) 동영상을 감춤으로써 의혹과 혼란을 가중시켰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군사기밀을 다수 유출하는 잘못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군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지구상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집단을 마주하고 있는 군대가 맞는지 기가 찰 정도다. 북한이 천안함 공격보다 더 광범위한 도발을 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우리 군의 총체적 기강해이와 부실 실태를 접하고 보니 식은땀이 난다. 감사원은 국방부에 이상의 합참의장을 포함, 25명의 현역 군인과 고위 공무원을 징계하라고 통보했다. 이들에 대한 문책(問責)은 불가피하다. 도발한 북한은 놔둔 채 왜 우리 군만 흔드느냐는 지적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북한에 대한 추궁과는 별도로 우리 군의 허술한 실태가 확인된 이상 그대로 지나칠 순 없다. 신속하고도 과감한 문책인사를 단행함으로써 흐트러진 군의 기강부터 하루빨리 다잡아야 마땅하다.

이번에 드러난 군 조직체계상 문제점을 개선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예컨대 합참의 늑장 보고 이면엔 군정권(軍政權)과 군령권(軍令權)이 나눠진 탓이란 지적도 눈여겨봐야 한다. 합참의 해군 관계자가 직속상관인 합참의장에게 먼저 보고하지 않고 청와대의 해군 관계자에게 먼저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육해공군 합동작전을 지휘하는 합참의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군 시스템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완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더해 잠수함과 특수부대, 대량살상무기 등 온갖 비대칭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북한의 움직임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한층 강화돼야 한다. 북한이 어떤 상황에서도 도발할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하는 철저한 대북 억제태세. 우리 군에 주어진 지상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