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영희 칼럼

‘천안함 이후’ 대북정책의 향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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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북풍은 일부 높은 연령대의 유권자들에게는 여당이 기대한 효과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는 북풍이 역풍을 불러왔다. 정부·여당과 보수단체들이 쏟아낸 강경대응론은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를 조성했다. 북한 잠수함기지에 대한 정밀타격이 가능하다는 군 수뇌들의 발언, 구체적인 내용도 분명치 않은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는 보수진영의 강경자세는 이런 불안심리에 기름을 부었다. 영리한 야당은 선거를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의 단세포적인 대결구도로 모는 데 성공했다.

단호한 대응론의 기세는 여전하다. 가장 신중하던 대통령도 단호한 대응을 말한다. 그러나 단호한 대응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북한에 어떤 방식으로 평화파괴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지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자주 거론되는 것이 1976년 8월 북한군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다. 그때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갖추자 북한이 백기를 들었으니 우리도 전쟁을 각오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북한의 버릇을 고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벼랑 끝 전술은 동서고금의 호전(好戰)주의자들이 애용하는 슬로건이다. 그들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고 북한이 반격할 경우 미국 아닌 한국이 전장(戰場)이 된다는 사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국지적인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한 달에서 석 달 안에 북한의 괴멸은 확실하다. 그럴 경우 우리는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와 산업시설의 파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서 국록을 먹는 사람들은 피 흘리지 않고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한국은 북한을 처벌하는 데 대한 중국의 지지를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 중국의 동의 없이는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제재 결의는 고사하고 북한 규탄 결의도 끌어낼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평화파괴 행위를 강도 높게 규탄하는 의장성명으로 만족할 생각이지만 그것도 중국의 물타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서해상에서 예정한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중국 쳐다보느라 슬그머니 취소되거나 규모가 크게 줄어들 모양이다. 휴전선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날리기도 미루고 있다. 군사적인 조치는 처음부터 제외됐다. 그러니 단호한 대응에서 남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북 대응이 너무 나약하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부를 아무리 다그쳐도 중국이라는 현실적인 벽, 우리의 선택 폭이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달라질 수가 없다. 이런 요지부동의 환경은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요구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단단히 고치는 것이다. 북한은 내부사정 때문에 앞으로도 도발의 유혹을 자주 느낄 것이다. 어이없게도 한미 대(對)잠수함 훈련 중에 당한 천안함 침몰의 교훈을 살려 문자 그대로 북에서 개미새끼 한 마리 넘어오지 못하게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대칭 군사도발과 앞으로 늘어날 사이버 공격에도 강력한 스마트 파워로 대비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에 관한 감사원의 보고를 보면 대북 외양간만 고친다고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해방어를 책임진 군 수뇌부는 살찐 고양이들처럼 혼곤한 잠에 빠져 사건 며칠 전에 보고된 북한 잠수정 공격 가능성에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살찐 고양이는 눈앞에 알짱거리는 쥐도 잡으려 하지 않는다. 하드파워의 강화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군 지휘부의 대오각성이라는 소프트파워가 따라야 충분조건이 갖추어진다.

천안함 사건 전과 후의 남북관계가 같을 수 없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옳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대북정책의 비전이 나와야 한다. 군의 개편·강화도 그 비전의 틀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해체주의 외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는 용도 폐기할 때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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