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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번째 IOC위원 박용성씨> 공식 직함 60여개 시간별로 인생사는 '超 스피드 CEO'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朴 회장은 지난 19일 잠시 귀국해 국내 일을 보고 22일 미국으로 떠나 23, 24일 IOC 총회와 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해야 한다. 그 뒤에도 해외출장 일정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상공회의소 비서실에 물었더니 지난해 16개국 25개 도시를 다니느라 다섯달 가까이(1백44일)해외에서 체류했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직함만 꼽아보겠습니다. 회원사 5만여개의 우리나라 최대 경제단체인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회장, 세제발전심의위원장, 공정거래질서 자율준수위원장, 싱글PPM 품질혁신추진본부장, 전자상거래 표준화 통합포럼 회장, 두산베어스 프로야구단 대표로 계시지요.

해외 관련 직함도 많습니다. 국제유도연맹 회장,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세계상공회의소협의회 집행이사, 주한외국상공회의소협의회장, 한·중 e-비즈니스협회장, 한·일 자유무역협정 비즈니스 포럼 위원장, 여기에 IOC 위원까지 맡게 됐습니다.

경제단체·대기업 경영에다 정부 일과 해외교류, 체육계 일까지 깊숙이 간여합니다. 이 많은 일을 다 소화해 낼 수 있나요.

노트북 늘 끼고 살아

"대한상의 회장이 되면 이름을 빌려주거나 저절로 떠안는 직함이 많아요. 상의 회장이 된 뒤 하도 불려다니는 데가 많아 하루 세끼 걱정은 안한다는 농담까지 합니다. 일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열군데이고 내가 사회를 직접 봐야 하는 것만도 여섯군데지요. 하지만 분야는 달라도 사람이 모여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짜고 공동의 과제를 이뤄나가는 원리는 같아요. 시간이 없어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면 언제든지 그만 둘 겁니다."

그의 바쁜 일과는 밤 1시쯤 잠자리에 드는 데서 끝난다. 그리고 새벽 4~5시에 일어나 머리맡 노트북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노트북은 해외 어디를 가나 반드시 지참하는 그의 분신과 같다. 외국에 있을 때도 하루 수십건씩 들어오는 결재서류나 보고서·사신 등에 코멘트·응답하고 업무지시를 한다. 통신사정이 나쁜 나라에 가면 호텔 숙박비보다 통신요금이 많을 때가 허다하다.

상공회의소 임직원들은 어제 보낸 기안의 회신이 이튿날 꼭두새벽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엔 '부지런한 티를 내보려는 쇼'쯤으로 여겼다. 이젠 그의 스타일에 꽤 익숙해져 휴일 집에서 쉬다가도 PC를 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명실상부한 세계 체육계의 거물이 됐는데 잘 할 줄 아는 운동은 뭐가 있나요.

주말엔 知人들과 등산

"유도 명예7단증이 있지만 사실 유도복조차 한번 입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네요. 유도계 일을 하면서 한번 배워볼까도 생각했지만 '몸치'(운동신경이 무딘 사람)인 줄 뻔히 아는 주변사람들이 극구 말려서 포기했지요. 산보하다 발을 접질려 한번, 조깅하다가 넘어져 한번, 등산 갔다가 미끄러져 한번 모두 세번 다리가 부러졌을 정도니까요. 요즘엔 주말에 지인들과 서울 남산 등지를 걷는 일이 고작입니다."

그는 한때 골프 애호가(핸디 14)였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취미를 버렸다. 대신 사진과 음악감상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朴회장은 두산계열의 동아출판사 백과사전에 수록된 사진의 절반 가량을 손수 찍었을 정도로 사진광이다. '세계의 가볼 만한 1백1곳'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극적인 경기장면을 담는 데 열중했다.

CD음반 1만장을 모은 오디오 광이지만 요즘 음악 들을 시간이 없는 것을 한탄한다. 40대부터 익힌 컴퓨터 실력도 매니어급이다. 그래서 환갑을 넘겼는데도 '디지털 CEO'소리를 듣는다.

-경력이 크게 기업경영과 체육계 활동으로 나뉩니다. 서로 통하는 점이 없습니까.

"올림픽이나 유도선수권대회 같은 큰 스포츠 행사를 많이 치르면서 기업경영도 목표와 전략이 분명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절감합니다. 특히 미국의 기업경쟁력과 경영학 이론, 경제력이 강한 것은 스포츠가 생활화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체육을 통해 전략·전술을 세우고 실천하는 훈련을 합니다. 미식축구나 야구는 매순간 상황변화에 따라 전략·전술을 바꿔야 하는 대표적 운동이지요."

-올해 한·일 월드컵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요.

"같은 맥락에서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려야 해요. 16강에 들면 금상첨화지만 더 중요한 것은 월드컵 개최국 한국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살리는 일이에요. 가령 프랑스팀이 울산에서 시합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프랑스 국민에게 파리를 누비는 현대자동차, 6대양을 누비는 한국 유조선·컨테이너선의 본고장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수원만 해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적 성곽도시이고 올림픽 스폰서인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곳임을 적극 홍보해야 합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늘 편하다. 짤막한 질문 하나 던져도 풀린 수도꼭지처럼 알맹이 있는 답변이 술술 나오기 때문이다. 시키지 않은 말도 많이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월 드컵 하면서 또다시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요. 우리 국민들이 '질서는 빠르고 편한 것'이라는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놀이·운동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요즘 보면 초등학생들이 과외다 학원이다 매달리다 보니 함께하는 놀이·운동시간이 없어요. 질서와 규칙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야 합니다."

朴회장은 고(故)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박용오 두산 회장 다음이고 박용만 두산 사장이 동생이다. 선친과 전문경영인인 고(故)정수창 두산 회장에 이어 두산 출신의 세번째 대한상의 회장이 됐다.

-두산은 재계에서 의좋은 형제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히는데.

"두 형님은 두산의 전반적인 전략 방향을 제시하고 나는 전략에다 약간의 실무를 보탭니다. 실무 총괄은 동생이지요.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전화로 몇마디만 주고 받아도 무슨 얘긴지 금세 통합니다. 1990년대 중반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 누구의 회사 따지지 말고 일단 돈되는 거 팔아서 살아남자'고 형제들이 쉽게 뜻을 모은 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두산의 회생경험을 외환위기 이후 명강의로 설파해 '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한시도 가만히 못있고 뒤흔드는 체질이어서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뭔가 일들이 벌어진다.

말·걸음·식사도 빨라

대한상의 회장 취임 이후 각종 정책건의를 쏟아내 이 단체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한외국상공회의소들의 모임을 창설했고 지난해엔 세계상공회의소 총회를 아시아에서 처음 서울로 유치했다.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이 된 뒤 컬러 유도복을 만들어 유도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朴회장 집무실에 걸려있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휘호가 그의 좌우명이다.

진념 경제부총리와는 친구(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사이다. 그래서 재계와 정부간의 가교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원만히 하고 있다는 평도 듣는다.

-성미가 너무 급하고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던데.

"성질 급한 건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졌어요. 상공회의소 임직원들도 이제는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말을 천천히 한다고 칭찬(?)할 정도예요. 일 욕심 많은 건 천성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는 말만 빠른 게 아니라 매사가 그렇다. 걸음걸이도 빠르고 음식도 빨리 들고 의사결정도 빠르다. 젊을 때는 맥주 한병을 6초에 마시기도 했다.

-요즘 잇따른 '게이트'사건들을 어떻게 보는지.

"벤처의 성공 확률은 5% 미만이에요. 산업의 활력소지만 투기판 같은 면도 있지요. 이런 데에다 한국경제의 장래를 너무 맡기려다 보니 거품과 비리가 생겨난 거예요. 우리나라는 10년은 더 제조업으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통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게 시급해요. 이것만 제대로 되면 중국에 대한 우위를 상당기간 지킬 수 있다고 봐요."

홍승일 기자

<박용성 위원은...>

▶1940년 서울 출생

▶1959년 경기고 졸업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9년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MBA)졸업

▶1973년 한국투자금융 상무

▶1974년 두산식품 전무

▶198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

▶1986년 대한유도회장

▶1989년 대한민국 체육상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

▶1996년 금탑산업훈장

▶1998년 국제상공회의소(ICC)한국위원회 의장

OB맥주 대표이사 회장

▶2000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1년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대표이사 회장

▶200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

이달 초순 한국의 세번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이 된 박용성(朴容晟·62)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인터뷰 의향을 묻는 e-메일을 며칠 전 저녁에 보냈더니 바로 이튿날 아침 응답이 떠 있었다. "아침 일찍 경기장에 나가봐야 하니 궁금한 사항을 보내주면 되도록 빨리 회신하겠다"는 내용. 그는 IOC위원 자격으로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현장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즉각 질문을 보냈다. 그러자 꼭 하루 만에 8천자 분량의 긴 서면 인터뷰 문안을 호텔 방에서 손수 작성해 보내왔다. 말미엔 "더 쓰고 싶은데 이제 나가봐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2000년 5월 그가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한 뒤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자에겐 이런 속전속결 스타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朴회장은 나라 안팎에서 무려 60가지가 넘는 공식 직함을 갖고 있다. 덕분에 하루를 시간대별로 쪼개 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뭘 결정하는 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지 모른다. e-메일 인터뷰를 시도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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