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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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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국의 터너상은 늘 의외의 선택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올해에도 항의 시위대가 최종 후보작을 전시한 테이트갤러리에 몰렸다. 시위대들은 "그게 어떻게 미술이냐, 전부 TV 방송국으로 보내라"고 주장했다. 최종 후보작 네 편이 모두 영상물이었기 때문이다.

수상작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고향 텍사스를 찍은 다큐멘터리다. 제레미 델러 작 '메모리 버킷(Memory Bucket.기억의 두레박)'은 20여분간 차분한 인터뷰로 진행되지만 메시지는 상징적이다. 1993년 86명의 광신도가 집단자살한 웨이코 농장의 오늘을 지키는 당시 생존자가 등장한다. 생존자의 증언을 듣자면 저절로 이라크 전쟁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론 무장한 광신도들이 방위군에 저항하다가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비극이다. 그런데 생존자는 "평화적인 신앙공동체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군대가 쳐들어와 포위하고 헬기와 탱크를 동원해 부녀자까지 몰살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은닉했다고 주장한 불법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죄 없는 생존자들은 재판 대기하느라 1년간 수감됐다.

황당한 느낌이 들 무렵 화면은 크로퍼드 목장 인근 햄버거 가게로 옮겨간다. 벽마다 주렁주렁 부시가 동네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젊은 여종업원이 말한다. "부시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친절하고 재미있고 편안하고…." 그 표정과 말투는 분명 진심이다.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플레허티는 "다큐는 발견과 폭로의 예술"이라고 갈파했다. 델러는 부시의 고향 마을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해석했다. 웨이코 현장과 인근 햄버거 가게는 그가 발견한 미국과 부시의 단면이다. 전혀 무관한 두 장면은 나란히 놓임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멀리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은 이래, 가깝게는 65년 일본의 소니사가 휴대용 비디오카메라 포타팩을 선보인 이래로 영상은 늘 예술가들의 실험대상이었다. 이제 다큐는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영화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우리도 영상문화엔 남부럽지 않다. 대통령 장인의 좌익경력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등장할 정도니. 과연 발견과 폭로의 예술일까 궁금해진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