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메들리로 듣는 클래식 명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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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지난해 11월 4일 런던 로열 앨버트홀.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공연 티켓 2장을 제시하는 관객들에게 CD 한장씩을 무료 제공했다.

20년 전 그날 로열필하모닉의 녹음으로 출시돼 지금까지 전세계에 1천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훅드 온 클래식'앨범의 발매 2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음반 편곡자인 루이스 클락(55)의 지휘로 '훅드 온 어 송''훅드 온 차이코프스키''훅드 온 아메리카'등을 연주했다.

'훅드 온 클래식'발매 20주년을 맞아 국내 시장에 다섯 장의 CD를 한 장 가격(1만4천원대)에 엮은 음반이 발매됐다. 이미 발표된 LP 4장 분량에다 처음 소개되는 '훅드 온 어 비틀스 트리뷰트''훅드 온 스윙'을 보태 CD 5장으로 묶은 것이다.

1982년 영국 싱글 차트 1위,빌보드 팝차트 13위, 국내 팝차트 56위(1월은 10위)에 오른 '훅드 온 클래식'은 국내에서만도 5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로열필하모닉의 연주에 드럼 머신 음향과 디지털로 합성한 박수 소리까지 보태 클래식 음악도 지루하지 않고 신나게 즐길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차이코프스키의'피아노 협주곡 제1번',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0번',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모음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클래식 명곡 17곡을 5분 만에 듣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발상이었다. 작품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명료하게 집약돼 있는 테마를 디스코 리듬에 맞춰 메들리로 엮어낸 것이다.

크로스오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요즘 세태와는 달리 당시엔'훅드 온 클래식'을 이단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주제만 따로 떼내어 메들리로 듣는 것은 매우 '경제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보수적인 클래식 매니어들은 이같은 단세포적이며 퇴행적인'퀴즈식 감상'이 상업주의의 극치라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81년 봄에 발매된 팝 디스코 메들리'스타스 온 45'의 클래식 버전이랄 수 있는 이 앨범은 '타임'지 독자들이 뽑은 '20세기 최악의 발상 100'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디스코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클래식 테마의 퍼레이드는 방송 시그널과 배경음악으로 안성맞춤이었다.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꾸민 크로스오버의 원조라고나 할까.

루이스 클락은 록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다가 정규 음대에 늦깎이로 입학해 편곡·작곡·지휘를 전공, 졸업 후 전업 편곡자로 나섰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편곡을 도맡은 그는 83년 로열필하모닉의 종신 명예단원으로 추대됐다.'훅드 온 클래식'외에도 비틀스·아바·필 콜린스를 로열필을 위해 편곡했고 런던심포니가 녹음한 '클래식 록'시리즈도 맡았다.

한편 이번에 함께 출시된'훅드 온 비틀스'는 비틀스의 카피 밴드인 미스터리 밴드, '훅드 온 스윙'은 맨해튼 스윙 오케스트라가 각각 연주했다.'훅드 온 클래식 바로크'를 편곡한 에토레 스트라타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베스트셀러 앨범'온리 러브'에서 편곡을 담당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최근 세계 무대에 급부상 중인 테너 호세 쿠라의 크로스오버 앨범의 선곡·편곡을 맡았다. 또 오는 4월 아이드림 미디어에서 출시될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크로스오버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아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02-3775-133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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