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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과 싸워야 강팀 이길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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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거스 히딩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미주 전지훈련 기간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드러냈다. 북중미 골드컵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사생활까지 질타받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명장다운 면모는 팀을 추스르는 장면에서 드러났다. 의기소침한 선수들을 위로하며 팀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며 38일간의 장기 전훈을 마감했다.

귀국을 앞둔 15일(한국시간) 숙소인 몬테비데오 셰라톤호텔에서 이번 전지훈련에 대한 그의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이번 전훈에 대한 총평은.

"경기 결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단지 겸연쩍어할 뿐이다. 이번과 같은 강행군은 한국 프로리그에서조차 못 해봤던 것이고 큰 도움이 됐다. 선수들이 프로답게 규율을 잘 따랐고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잘 마무리해줬다. 골드컵에선 거의 모든 경기에서 주도권을 잡고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실점했다. 전술적으로 우위에 서고도 질 경우 그 여파는 크다. 집중력 상실과 영리하지 못한 경기 운영은 개선돼야 한다. 앞으로 해외진출 선수들이 합류하면 나아질 것으로 본다."

-유럽 전훈 때 선수 변화가 있나.

"전적으로 해외 진출 선수들의 합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들이 합류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훈 선수들이 유럽에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선수는 분명 바뀔 것이다. 보강 멤버에는 국내 선수들도 포함될 수 있다. 해외 진출 선수들이라도 월드컵 엔트리에 자동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두명에게는 소속팀에서 규칙적인 경기 출전을 못할 경우 탈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명보의 경우 다시 훈련을 재개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몸 상태를 확인한 뒤 유럽 전훈 합류 여부를 결정하겠다. 윤정환의 경우는 입장이 좀 다르다. 체력이 좋지 않은 데다 자신이 키플레이어를 맡고 있는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진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다. 합류 여부는 고려 중이며 그가 만약 엔트리에 들고 싶다면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번 전훈에서 부상 선수가 많았다.

"한국 선수들의 성실성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경기의 중요성에 따라 완급을 조절할 필요는 있다. 물론 엔트리를 놓고 선수들 사이에 경쟁을 붙여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내일 경기를 앞두고 오늘 연습에서 다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4월 정도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한 주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상을 염려해 휴식을 많이 취하거나 몸을 사리면 체력은 떨어지게 된다. 초점은 6월에 맞춰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선택을 평가한다면.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내가 한국팀을 맡은 출발점이다. 지난해 9월 이후 한국팀의 경기를 보면 강팀이 결코 우리를 압도하지 못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두가지다. 월드컵 직전까지 약팀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며 나갈 수도 있다. 이기는 것은 좋은 일이고 국민들의 기분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강팀과 맞닥뜨리면 틀림없이 후회한다. 강팀을 만남으로써 우리의 약점을 찾을 수 있고 선수들의 기량도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힘든 길을 택했다. 유럽 출신 감독 하나를 영입했다고 한국 축구가 갑자기 국제수준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온 것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월드컵 16강 진출이 나의 당면과제라는 것을 안다. 1996년 네덜란드를 맡아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경험도 있다. 1년반은 짧은 시간이지만 끌어올릴 수 있다."

몬테비데오=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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