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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4> 제99화 격동의 시절 검사27년 <48>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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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나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는 그의 아들 김현철씨의 청문회 변호를 맡아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비록 공식적인 변호인 역할은 사양하였으나 나는 김현철씨의 자문에 여러 차례 응했다.
이에 대해 金 전 대통령은 내게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위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또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 운영차장으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김기섭(金己燮)씨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변호사로서 그를 만나게 됐고 홍인길(洪仁吉)전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 등의 변호를 맡으면서 권력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이 힘있고 권세 있을 때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가 가장 불행한 처지가 되었을 때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이치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이종구(李鍾九)전 국방부장관의 변호를 맡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정해창(丁海昌)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한번 만나자고 하니 시간을 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연희동의 盧 전 대통령 자택 지리를 물어 그날 낮 盧전대통령을 자택으로 방문했다.
盧전대통령은 "李장관의 변호를 맡아 고생이 많다"고 하면서 금일봉을 내놓았다. 나는 몇 차례 사양했으나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받았다.
검찰 재직 시절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등 간부들로부터 명절 때 받았던 격려금이 생각났다. 퇴직 후 대통령을 몇십분간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자체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기에 여러 가지로 감회가 많았다. 그 다음 날 서울구치소로 가서 李장관에게 "盧전대통령을 만나 당신 대신 수임료도 받았다"는 농담으로 격려금을 받은 경위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李전장관은 자신의 변호사를 불러 격려를 해준 盧전대통령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대단히 감격하는 것 같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하는 사태가 벌어져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도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구속 중이던 全전대통령이 구속집행정지로 경찰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5공 시절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양우(李亮雨)변호사가 나의 집을 방문했다. 李변호사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한 분이다. 내가 해병대 법무관 시절에 잠시 그 분은 해병대사령부 법무감(法務監)이었다.
李변호사는 자기가 全전대통령을 면회하러 갔더니 나를 지명하면서 변호를 부탁해 보라더라는 말을 꺼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가 하고 물었다. 당시 全대통령은 광주사태 등 여러 사건에 한꺼번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李변호사는 "비자금 사건이고 검찰과의 대화가 잘 안되고 있으니 검찰 출신인 당신을 全전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검찰은 그가 조성한 비자금의 상당 부분을 다른 사람들 명의로 채권을 사는 방법으로 은닉해 두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全전대통령측은 이미 진술한 것 외에는 더 이상 은닉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검찰도 자력으로는 은닉해둔 재산을 찾아낼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결국 검찰로서는 수사에 진전은 없고 애만 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수사의 책임자는 김성호(金成浩)부장이었다. 金부장도 내가 全전대통령의 변호사가 되어 자기의 수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어쨌든 李변호사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全전대통령의 변호인을 하기로 반쯤 승낙은 했다. 그러나 내가 검찰과 全전대통령 사이에서 어떤 중재 역할을 맡는다든지 딱히 수사의 진척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경찰병원에 입원해 있던 全전대통령은 나에게 병원으로 면회를 오라고 李변호사를 통해 여러번 독촉 했다. 그러나 나는 검찰 수사팀과 접촉한 결과를 李변호사에게 알려주는 정도의 변호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기억한다.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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