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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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의 주인은 전쟁 통에 집을 떠났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르고, 식구들은 먹고살 양식을 사기 위해서 헐값에 내놓았을 것이다. 별의별 책들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나온 세계문학 전집류에서부터 역사와 사상 서적들과 대중소설류에서 당시에는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나중에 군사정부 시기에 뒤늦게 금서가 된 사회주의 계열 책이나 월북 인사들의 책도 많았다. 사실 일제 이후 해방공간에 나왔던 이런 책들은 칠십년대까지만 해도 인사동 고서점가와 청계천에 가면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큰누나가 나처럼 책을 좋아해서 우리는 나이 차이도 모르고 서로 먼저 읽고 건네주고 건네받는 식으로 다투어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며 톨스토이의 '부활'은 어머니가 줄거리를 얘기해서 미리 알고 있던 책들이었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니 '리어왕' '햄릿' 등은 연극 대본이 아니라 소설로 각색된 것을 읽었다. 남한의 출판계도 휴전이 되고부터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해 잡지도 내고 번역물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른들이 보는 대중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를테면 빅토르 위고의 '아! 무정(레미제라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 등도 나중에 완역된 것들을 다시 보았지만 어려서 간추린 것을 보았던 때의 감동이 훨씬 강렬했다고 기억한다. '삼국지'는 먼저 어린이 잡지에 연재되던 만화를 보다가 책을 찾아 읽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수호지'와 '손오공'으로 넘어갔다. '열국지'와 '금병매' 등은 역시 좀 나중에 중학교에 올라가서 읽게 된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다가 주위에 오가는 식구들의 참견을 받거나 말을 걸어오는 것도 싫어져서 일부러 군용 손전등을 가지고 비좁은 다락에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홍명희, 이기영, 채만식 같은 본격문학뿐만 아니라 김내성, 방인근 등의 통속소설도 읽었다. 이를테면 사춘기에나 시작될 독서열에 의해서 나는 초등학교 때에 동서양의 고전들을 읽기 시작한 셈이다.

사년 동안이나 끌어오던 전쟁은 수백만명의 희생자와 천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남긴 채로 어정쩡하게 '휴전'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비가 새는 무너진 공장 건물의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공장이 있던 외곽은 들판과 강물이 지척에 있어서 겨울만 빼고는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의 교실이어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올 적마다 신나게 놀았다. 보리나 콩이 익어갈 무렵이면 그대로 꺾어다가 밭고랑에 앉아서 불에 그슬려 먹었는데 이것을 시골 출신 애들은 '타작'이라고 불렀다. 벼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꿰거나 빈 사이다 병에 담아다가 볶아 먹고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기도 했다. 삼베로 덮은 대접 안에 된장을 미끼로 넣어 잔챙이 물고기를 잡는 보쌈 놀이며 지붕의 처마 밑을 뒤져서 참새를 잡는 방법도 서로 배웠다.

대구 피란학교에서 만났다가 돌아와서 다시 만나 함께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던 영식이는 바로 우리집 건너편 파출소 옆의 적산가옥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위로 누나들 셋이 있던 막내아들이었다. 어머니부터 누나들까지 온 식구가 새벽기도회까지 나가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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