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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중음악산업 ② 중견 기획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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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의 젊은 대중음악 팬들이 팝송 일변도에서 벗어나 관심 범위를 가요로 본격 확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도 신중현을 필두로 한 몇몇 가수들이 록을 비롯한 팝적인 요소를 갖춘 노래를 불렀지만 일반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들이 계속 등장하며 세력을 형성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90년대 중반부터 역전되기 시작한 팝과 가요의 음반 시장 점유율은 2000년대 들어 완전한 가요 우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음반산업 관계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제 가요가 음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음반의 주요 구매층이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팝 음악보다 자국의 노래를 훨씬 선호하고 있다고 단언해도 무리가 아니다.
현재 가요가 대중음악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역시 90년대 후반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보이 밴드와 걸 그룹의 득세가 크게 작용했다. 열성적인 10대 팬들이 '1백만장, 2백만장 음반 판매'를 쉽게 회자되게 만들었다.
지난주 이 코너에서 소개한 SM엔터테인먼트·싸이더스 등 대형 기획사의 '스타 제조 시스템'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 가요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한 데는 수많은 뮤지션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수준 높은 음악을 내놓은 뮤지션들이 대중음악 팬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음반산업 발전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기량 있는 뮤지션들을 배출한 중견 기획사들의 역할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대표적인 기획사가 동아뮤직(대표 김영)이다. 99년 서울 충정로에서 여의도로 사옥을 옮기면서 동아뮤직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의 원래 이름은 동아기획.
78년 설립된 이후 동아뮤직이 가요계에 내놓은 가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면 곧 가요사와 다름없다.
지금도 한국 포크 계열의 지주로 활동 중인 조동진, 전설로 남은 '내사랑 내곁에'의 가수 고 김현식과 한국 록의 신화 그룹 들국화가 동아뮤직을 통해 등장했다.
'가시나무'의 듀오 시인과 촌장, '누구 없소'의 한영애, 한국 블루스 음악의 장을 개척한 신촌블루스, 한국 퓨전재즈 밴드의 대표주자 봄여름가을겨울, 서정적인 발라드의 장필순·유영석·박학기도 동아뮤직이 낳은 뮤지션들이다.
한국 여자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일 앨범 1백만장 판매를 기록한 이소라와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현철도 이 회사에서 데뷔했고, 김장훈·최진영·박완규·리아 등의 젊은 가수도 동아뮤직에서 음악을 시작했거나 꽃피웠다.
이 가운데 봄여름가을겨울·김현철·푸른하늘·박완규는 지금도 이 회사 소속이다.
신촌뮤직(대표 장고웅) 역시 한국 가요의 허리 역할을 해온 기획사로 손꼽지 않을 수 없다.
개그맨 출신인 장대표가 86년 설립한 이 회사는 초창기 심형래 등의 캐롤음반을 제작하다 그룹 부활 출신인 이승철의 데뷔 앨범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시작으로 본격 음악에 참여했다.
이후 권인하·박광현 등 싱어송라이터, DJ DOC·패닉 등 인기 듀오를 잇따라 배출했다.
90년대 들어 신촌뮤직은 특히 리듬앤드블루스(R&B)가수들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그룹 솔리드에서 독립한 김조한과 '애송이의 사랑'의 양파가 여기서 태어났으며, 한국 R&B 가수의 남녀 선두 주자로 꼽히는 박효신과 박화요비는 현재 신촌뮤직을 대표하는 가수들이다.
이외에 조동익·조동진·한동준·장필순·오소영 등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하나뮤직(대표 조동진) 역시 동아·신촌 두 회사와 같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가수들과 함께 80~90년대 한국 가요계의 허리를 뒷받쳐온 이들은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SM을 필두로 한 대형 기획사는 물론 수많은 중소 기획사들까지 댄스·TV·10대·뮤직비디오 위주의 공격적이고 상업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음악성으로 승부하기를 고집하는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무엇보다 고민케 하는 것은 뮤직 비디오, 특히 드라마화한 대형 뮤직비디오다.
제작비와 케이블 채널 방영료 등을 포함하면 많게는 수억원이 들어가는 뮤직 비디오를 활용한 마케팅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전략을 경원해온 중견 기획사들은 가요계 주류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음악성·가창력·콘서트 위주의 활동 전략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신촌뮤직 장고웅 대표는 "우리 가수들이 댄스 그룹들에 비해 음반이 덜 팔린다고 해서 음악 활동을 회의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매니어들이 음악성을 갖춘 가수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신촌은 SM·대영AV·예당·대성·서울음반·우퍼 등 주요 음반사·기획사와 함께 음반 배급사인 ikpop을 2000년 공동으로 설립해 음반 물류 현대화에 나섰다. 올해 ikpop의 시장 점유율은 40%에 이를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스타 메이킹 시스템'을 갖추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해외로 진출하는 기획사들과 음악성 위주의 가수 성장을 고집하는 기획사들 중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대중음악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후자에 속하는 기획사들이 활로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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