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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성 업무보고는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4일 재정경제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 눈에 띄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법무·회계법인에는 법인세를 물리지 않고 직원별로 소득세만 물리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경부 관계자는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혹시나 하고 1년여 전인 지난해 1월 업무보고 자료를 들춰보니 똑같은 내용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소득세를 알기 쉽게 개편한다는 등 엇비슷한 내용이 여러 군데 있었다. 업무보고를 앞두고 재경부도 많은 고민을 했다. 지난해 말 경제운용 방향을 내놓은 지 겨우 한달여 만에 갑자기 새 정책이 나올리 만무하기 때문.
재경부 관계자는 "경제정책이 보고 때마다 바뀐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용도 별로 없는데 근사하게 만들려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은 지난 2주간 꼬박 야근할 정도로 고생했다.
다른 부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탕·삼탕 정책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는 처지고, 최근 장관이 바뀐 부처는 아예 업무보고 준비를 새로 해야 할 판이다. 서둘러 추진해야 할 정책을 업무보고 때 내놓기 위해 늦추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업무보고가 띄엄띄엄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 25개 부처·위원회 가운데 이달에 일정이 잡혀 있는 곳은 8개 부처뿐이다. 나머지는 3월 이후 일정을 잡는다는 것인데, 새해 업무보고를 3월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일정이 늘어지는 바람에 자칫하면 상당수 공무원이 1분기 내내 업무보고를 매만지는데 매달리게 생겼다.
물론 업무보고를 준비하면서 정책방향을 차분히 정리해 보는 순기능이 있고, 부처에 따라서는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는 1년에 한번뿐인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업무보고 방식은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지금처럼 연초에 한번 의례적으로 꿰맞추는 이벤트 성격의 업무보고는 정보망이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날짜를 미리 정해놓고 하는 경직적인 업무보고보다는 중요한 현안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이 관계부처 장관이나 실무자들을 수시로 불러 보고도 받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는 방식이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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