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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관령의 중공군 (104) 적을 두고 벌였던 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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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러나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계제(階梯)가 아니었다. 일단 적은 3군단 정면을 무너뜨리면서 뚫린 틈을 따라 대거 밀려오고 있었다. 미 2사단과 내가 이끄는 국군 1군단의 측방이 점점 적의 공세 앞에 노출되고 있었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두루마리 지도를 펼쳐놓고 공격 방향을 지시했다. 우리 1군단은 대관령에서 서북쪽으로, 미 3사단은 하진부리에서 동북 방향으로 공격을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공격 시기를 물었다. 밴플리트 장군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지체없이 하라(Without delay)!”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미군 1해병사단 소속 저격수가 최전방 산악지대의 벙커 뒤에서 적진을 향해 사격 준비를 하고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경강도로의 속사리까지 진출한 중공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강릉과 정선을 향해 공격을 펼칠 낌새였다. 나로서는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는 중공군을 막기 위해서는 천혜의 요새에 해당하는 대관령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곳 험준한 지형을 제대로 지키고 있다면 중공군은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약 10여 분 만에 작전회의는 끝이 났다. 밴플리트 장군은 돌아갔다. 나도 대관령을 넘어오는 비행기 속에서 작전을 짜는 데 골몰했다. ‘부대 전체를 서쪽으로 향해 조금씩 이동시켜야겠다. 송요찬 장군의 수도사단 1연대(연대장 한신 대령)를 먼저 대관령에 급파해 길목을 막고, 수도사단 정면을 서쪽으로 움직인다. 그 공백은 동쪽의 11사단으로 메우고, 원래 11사단이 지키고 있던 방어지역은 군단에 배속된 1101공병단에 맡긴다’.

전투 경험이 별로 없던 11사단과 공병단은 동해상에 있던 미 7함대의 함포 사격으로 뒷받침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군단 사령부에 도착하자 바로 참모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나는 중공군과 교전 경험이 없는 1군단 지휘관들에게 내 생각을 상세히 말해줬다. 중공군은 현재 보급이 달려 작전 지속 능력에 한계를 보인다는 점, 제공권은 아군에게 있어 향후 반격에서 절대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참모들과 각급 지휘관들이 다 빠져나갔다. 1연대가 지금 움직이면 대관령까지 기동하는 데 약 3시간이 걸린다. 전투 배치에도 그 정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정도면 중공군이 대관령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전투 준비를 마칠 수 있다.

그러나 1연대의 이동 보고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오후 3시쯤에 작전참모인 공국진 대령(예비역 준장)이 아주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보고를 해왔다. “송요찬 장군이 1연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항명입니다-!”

송요찬(1918~80)

송 사단장이 수도사단 정면도 위험해 자신의 1연대를 뺄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긴급하게 내린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나도 기가 막혔다. 거센 불길처럼 닥쳐오는 중공군을 막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급히 출동해야 할 판인데 이게 무슨 경우인지 난감했다. 동부전선의 지휘관들에게는 그런 버릇이 있었다. 좁고 험준한 산악지형에서만 싸워봤던 터라 인접한 부대와의 연합작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면(局面)을 크게 보면서 싸움을 하는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송 준장은 나와 나이도 비슷하며, 최근까지 같은 계급이었다. 동부전선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용맹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전투를 잘 치르기로도 유명했다. 그런 그였던지라, 내게는 어느 정도의 라이벌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내부 구성원들끼리 보잘것없는 감정에 휘말려 벌이는 싸움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공국진 대령은 나를 다그쳤다. “당장 부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연약한 지휘 방식을 쓸 수는 없다”며 “육군 소장으로 만족할 겁니까, 아니면 명장으로 이름을 남길 겁니까”라며 극단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단 참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송요찬 준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에 45구경 권총을 차고 지프에 올랐다. 로저스 1군단 미 수석 고문관도 불러오라고 했다. 나는 공 대령과 로저스를 태우고 수도사단 사령부에 들어섰다.

나는 “사단장은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수도사단의 한 장병이 침대차를 가리켰다. 사단장 이상의 지휘관들이 트럭을 개조해 숙소로 쓰던 차량이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송 사단장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귀관은 내 명령에 복종할 것이냐, 아니면 불복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각하, 죄송합니다.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출동명령을 내렸다. 한신 대령이 이끄는 1연대는 마침 출동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한신 대령은 우리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관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만일에 대비해 준비를 서둘렀던 것이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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