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10만여 명 ‘천안문’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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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4 천안문 사태 21주년을 맞아 4일 홍콩섬 빅토리아 파크에서 10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촛불집회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흰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참석자들은 “천안문 사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재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신민주여신상’이 세워졌다.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상징이었던 민주여신상을 본떠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 천웨이밍(陳維明)이 만들었다. 행사 참석차 1일 홍콩을 찾은 그는 입국이 불허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집회에 앞서 천안문 사태 당시 핵심 지도부의 한 명이었던 왕단(王丹·40)은 인터넷 단문 메시지 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천안문 사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싸이월드 격인 페이스북엔 “천안문 사태는 중국 정부의 주장처럼 반혁명 폭동이 아니다. 1911년 공화정부를 세운 신해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돼야 한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은 관광객과 시민의 발길이 이어져 겉으로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찰관과 보안요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순찰을 돌며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한편 천안문 시위를 군과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리펑(李鵬·81) 전 중국 총리는 이달 22일 홍콩에서 회고록 『리펑의 6·4 일기』를 출간한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리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천안문 시위 사태가 문화대혁명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목숨을 걸고 저지했다”고 밝혔다. 리펑은 “당시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이 무력진압을 결정했다”며 “덩은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지만 피를 볼 수밖에 없다’며 진압 명령을 내렸다”고 술회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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