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친구같은 C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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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 (위 사진) 남중수(左) KTF 사장이 함께 한 직원 생일잔치.(아래 사진) 허태학(오른쪽 둘째) 삼성석유화학 사장의 뮤지컬 미팅.

"임금이나 장수의 자리에 있는 자라면

뛰어난 영웅의 마음을 잡아

자기 심복으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공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녹봉을 내리며

내가 뜻하는 바를 여러 사람에게

통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대중과 좋아하는 바가 일치하게 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생략)"

- 중국의 병서인 삼략(三略) 중 상략(上略) 1 -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원들과 살갑게 지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화 공연을 같이 보고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스킨십을 기르고 있다. 또 온라인 편지로 직원들의 마음을 잡기도 한다. 상하 간의 벽을 허물어 자연스럽게 회사의 목표를 공유해 보자는 취지다. 실제로 일부 CEO는 공연 내용이나 전시회 특징 등을 화제로 경영이야기를 한다. 재계에선 이를 'CEO의 감성 경영'이라고 부른다. 조직원들이 마음속으로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의 하나다.

◆ 문화 공감대=지난달 26일 밤 서울 정동의 한 뮤지컬 극장. 공연포스터 앞에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직원 50여명이 모였다. 허 사장이 매달 직원과 편하게 만나는 문화 미팅이다. 참석자들은 공연 뒤 호프집으로 옮겨 얘기를 주고받았다. 허 사장이 "기업도 성공하려면 공연처럼 스태프의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건네자 박성혜(26.인사그룹) 대리는 "준비한 만큼 경영 성과도 좋아지는 것 같다"며 "평소 어렵게 느꼈던 사장님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CEO들이 직원들과 함께 가는 곳은 뮤지컬 공연장.미술전시회.음악회.극장 등 다양하다. 한순현 보루네오 사장은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미술전을 관람한다. 이달에도 10여명의 직원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는 유화 전시회를 볼 예정이다. 한 사장은 "명품 가구를 만들기 위해선 직원들의 미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며 직원들과의 디자인 공감대를 넓히려 애쓴다. 박병엽 팬택 계열 부회장은 직원 가족까지 챙겨 기업 문화를 전파한다. 박 부회장은 내년 1월 직원 자녀들을 1인당 250만원이 드는 영어캠프에 보낸다. 자녀가 행복하면 부모는 저절로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 우리는 친구=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 남중수 KTF 사장과 직원 10여명이 케이크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 사장이 매달 생일을 맞은 직원들을 축하해 주는 파티다. 남 사장이 축가를 불러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자 참석자들이 크리스마스와 애인 등을 주제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김예정(27.인사팀) 주임은 "사장님이 직원 이름은 물론 가정사까지 들여다 보는 것 같다"며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직원들과 퇴근 후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주고받는 CEO도 있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매달 회사 인근 식당에서 직원들과 가정이나 회사 얘기를 나누는'PV데이'행사를 연다. 구성원(People)의 가치(Value)를 존중하자는 취지다. 이달 말에도 캔맥주 송년회를 겸한 PV데이가 예정돼 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지방의 생산 현장을 살핀 후 현장 직원들과 함께 소주를 마신다. 회사 측은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김 부회장이 직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 온라인 미팅=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삼성SDS 본사. 김인 사장이 '월요편지'(e-메일)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이 편지에서 김 사장은 "호주 출장 중 비행기에서 만난 한 스튜어디스가 SDS를 좋아한다고 말해 가슴이 뿌듯했다"며 "회사는 자상한 어머니로, 직원은 열정이 넘치는 자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자"고 강조했다. 권자영(26.인재개발그룹) 선임은 "사장님의 월요 메일은 허물 없는 의사소통의 장"이라고 말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사내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채팅이 가능한 'CEO와의 대화'코너를 만들었다. 열린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다. 자칫 이름뿐인 게시판이 될 것을 우려해 직원들이 올린 글을 새벽까지 체크해 회신을 한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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