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복씨 일본 '가조엔' 칠공예 3년간 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옻칠쟁이 전용복(全龍福.51)씨. 그는 우리나라 전통의 옻칠을 업(業)으로 삼은 장인이지만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그가 스스로를 동포들에게 알리는 자서전 『나는 조선의 옻칠쟁이다』(한림미디어.9천8백원)를 냈다. 한.일문화와 전통예술에 해박한 이어령씨는 이 책을 읽고 "전용복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괴(自愧)와 경의를 함께 보낸다"라고 썼다.

"가마이 생각해 보먼, 저 같은 행운아도 없을 꺼라예."

전화로 들려오는 강한 부산 사투리.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인(名人)의 여유가 느껴진다. 1988년 이후 일본에서 살면서 부산에 가끔 들른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나서던 그와 연락이 닿았다. 무척 달변이고 다변이었다. 15년째 이역만리에서 조국의 전통예술을 갈고 닦으며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았던 듯하다.

그는 확실히 행운아다. 조선의 칠쟁이로서 일본의 '가조엔(雅敍園)'을 만난 것은 그의 운명을 바꾼 행운이었다. 가조엔은 일본 도쿄(東京) 한복판에 있는 복합연회 공간으로 음식점과 미술관.예식장까지 들어 있다. 모든 장식이 다 옻칠인 거대한 칠공예 건물이다. 일본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회장으로 꼽힌다.

1931년에 만들어진 가조엔의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엄청난 칠공예를 전부 복원하고, 일부는 새로 만든 장인이 全씨다. 88년부터 3년에 걸친 복원 과정에서 사용한 칠의 양이 10t. 보통 옻칠 작가가 평생 사용하는 칠의 양이 3백70㎏이니 상상을 초월한 방대한 작업이다.

全씨가 가조엔을 복원하는 과정을 읽자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가 떠오른다. 세계를 무대로 거대한 기업군을 일군 과정이나, 가조엔이란 한 건물을 통해 옻칠이라는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과정이나 주인공의 집념과 노력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옻칠이 거의 잊혀졌는데, 일본에 가보니까 그게 그대로 있는 거라예. 70년 전 식민지의 천대받는 장인이었던 우리 선조가 찬란한 예술의 세계를 남겨 놓고 간 거지요. 그거 복원하면서 진짜 칠을 배웠다 아입니까."

물론 가조엔과의 만남은 공짜가 아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칠공예로 살아가던 全씨가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나름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가조엔 경영자에게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가조엔의 간부가 부러진 상(床)을 전통 옻칠로 복원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全씨는 이후 수년간 일본을 들락거리면서 가조엔 복원에 응모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몰두했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고, 일본 현지답사를 할 때는 돈이 없어 노숙자 생활을 했다. 그 결과 우리보다 훨씬 앞선 칠공예 나라의 작가들을 물리치고 全씨가 가조엔 복원의 책임을 맡았다.

全씨는 전화통화에서 특히 '칠(漆)에 대한 한국인의 무지'에 답답해했다. 우리는 기원전서부터 옻칠을 사용해온 민족이라는 점. 옻칠은 수천년 보존 가능한 천연 소재 물감이며, 옻칠로 현대 회화처럼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옻칠은 수천년을 지나도 색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저는 불행한 작가입니다. 진짜로 창작에만 전념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칠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그게 뭔지 알리는 일도 해야 안됩니까. 그라다 보니 내 얘기를 책으로 썼고, 지금은 칠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全씨는 조국의 무관심으로 불행하다고 한다. 그 불행 역시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꿔 보자는 심산이다. 그래서 머지않은 장래에 8백명의 제자가 포진한 제2의 조국(일본)을 떠나 조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한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