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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문화 키워드] 출판 - 팩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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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올해 출판가는 ‘다빈치 코드’, ‘단테클럽’ 등 교양과 재미를 두루 갖춘 ‘팩션’바람이 거셌다. 사진은 서울 교보문고의 인기 소설 진열대. 오종택 기자

올 한 해 문화계는 다사다난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욘사마' 열풍 등 반가운 소식도 많았지만 출판.대중가요 등 여전히 침체의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한 분야도 눈에 띄었다. 올 한해의 흐름을 상징하는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문화계를 분야별로 짚어본다.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 베텔스만) 100만부, '단테클럽'(매튜 펄 지음, 황금가지) 8만부, '4의 규칙'(이안 콜드웰 외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10만부….

1만부만 팔려도 '대박'이라던 올 출판가에서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운 책들이다. 모두 외국작가의 작품이면서 역사추리소설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실(史實)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현실과 허구를 교묘히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보통 역사소설과 다르고, 단순히 수수께끼를 푸는 데서 나아가 묵직한 지적 재미를 겸해 추리소설로 묶기도 적당치 않다. 이 때문에 이런 작품들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혼합이란 뜻의 합성어인 '팩션(faction)'으로 불린다. 결국 이들 팩션에 대한 뜨거운 호응은 올 한해 우리 출판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 팩션이란 용어를 대중화한 것으로 알려진 김성곤(서울대 영문과) 교수에 따르면 팩션은 1960년대 미국 언론계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개발한 기사작성법을 작가들이 빌려온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사실과 감정을 섞은 팩션은 독자를 겨냥한 새 소설양식이다. 이를 위해 사실을 얼개로 다양한 지식과 상상력을 담아내 작품이 역사인지 소설인지, 그러니까 진실인지 허구인지 모호해질 정도다. 이 때문에 출판평론가 이권우씨는 "팩션은 지식이란 쓴 약에 문학이란 당의정을 입힌 것"이라면서 팩션을 아예 '지식소설'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할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소재로 한 '다빈치 코드'. 정통 기독교에 대한 도발적 해석을 초기 기독교 비사(秘史), 미술사, 인류학과 기호학에 관한 지식으로 뒷받침하며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주인공 로버트 랭던과 소피 느뵈의 활약 무대가 된 루브르 박물관이나 생 쉴피스 성당에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진위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했다. '천사와 악마' 등 댄 브라운의 작품은 물론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루비박스), '다빈치 코드의 진실'(예문), '다빈치 코드 깨기'(규장) 등 관련 서적이 줄이어 출판돼 '팩션 열풍'을 이끌었다.

19세기 중반 미국 학계에서 '신곡'의 번역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단테클럽'이나 실재하는 중세 고문서의 해석과정에서 뒤얽힌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4의 규칙'도 마찬가지.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어원학.건축.문학.역사 등 탄탄한 인문학 지식이 녹아있어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독자를 빨아들였다. 장은수 황금가지 편집부장 역시 "작가들은 작품에 진실성을 부여해 문학적 또는 철학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즐겨 쓰는 듯하다"면서 "재미있게 읽으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독자들도 좋아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우리 출판계가 이 같은 독서현상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파편화한 지식이 넘쳐나는 정보화사회에서 여러 분야를 융합하는 팩션 양식은 생명력이 길 것"이란 전망(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소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장 부장은 "팩션을 쓰려면 우리 경우 한문 독해 등 사료를 재구성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갖춘 작가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하며 '꾿빠이 이상'의 김연수, '방각본 살인사건'의 김탁환을 주목했다. 이들은 각각 일제 치하 문단, 조선시대 열녀문의 소설적 복원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신작이 팩션의 토착화에 얼마나 기여할지 주목된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바로잡습니다] 12월 7일자 27면

12월 7일자 27면 '2004 문화 키워드'기사 중 '단테클럽'의 판매부수가 취재 착오로 잘못 나갔습니다. 80만부가 아니라 8만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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