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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빨갱이'란 굴레 20년만에 벗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빨갱이'라는 딱지를 20년 만에 완전히 뗀 것 같습니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전성원(田成源.47)씨.

田씨는 "그동안 내 자신과 주변을 옥죄던 악몽과 굴레에서 이제 해방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군사정권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198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송회(五松會)'사건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당시 공안당국은 田씨를 비롯한 군산 제일고의 전.현직 교사 9명이 이적단체를 만들어 좌경 의식화 교육을 하고 학생.농민 폭력혁명을 선동했다며 국가보안법을 적용, 이들에게 1~7년씩 징역을 살게 했다.

田씨는 당시 전북대 공대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학교에 부임한 지 2년째인 햇병아리 교사였다.

그는 주변의 젊은 선배 교사들과 함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안타까워하며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곤 했다.

이들은 그 해 4월 19일 학교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비겁하고 부끄러운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자"고 의기투합, 산봉우리에 올라가 5.18위령제를 지냈다.

그러나 이들은 며칠 뒤 불온서적을 탐독하고 이북방송을 청취한 '오송회' 조직원으로 낙인찍혀 수사기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며칠 동안 잠재우지 않고 조사를 했으며 벌거벗긴 뒤 손.발을 묶어 통닭처럼 매달아 놓고는 물고문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공포감으로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살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田씨는 3년2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왔지만 차별과 감시 때문에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서른세살때 우석대 약대에 편입해 약사자격증을 땄다.

그 뒤 서울 등에서 관리약사 생활을 하다가 3년 전 전주시 서신동에 1백여평 규모의 초대형 약국을 열었다. 현재는 직원이 10여명이나 된다.

그는 88년 사면복권돼 교육부의 특별조치로 2000년 9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교단(이리여고)에 복귀했지만 6개월 만에 집안 사정으로 그만뒀다.

田씨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시로 표현하다 92년 작고한 선배교사 이광웅 선생님이 이 기쁨을 함께 맛보지 못하는 게 매우 안타깝다"며 "당시 5.18 위령제를 함께 지냈던 장소에 기념탑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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