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빠가 돌아왔다’ (rev.0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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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다. 술주정뱅이에 무위도식하는 아빠는 아들이 원조교제 한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가출했다가 4년 만에 돌아온 오빠는 아빠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다. 남편의 무능력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간 엄마는 입만 열었다하면 욕설을 쏟아낸다. 여중생 딸은 아빠를 노숙자로 만들자며 엄마를 꼬신다.

이쯤 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식의 결말은 물건너 가 보인다. ‘온갖 갈등을 단박에 해결해주는 끈끈한 가족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웬만하면 막장 상황에 몇 번 혀를 차주며 고개를 돌릴 법한데, 이들이 밉지 않다. 오히려 90분간 배꼽 잡고 웃다보면 은근히 정이 간다. 비틀어진 현대 가족의 단면을 드러내지만 이들에겐 적어도 ‘가족 간 소통 부재’란 없다.

‘오빠가…’는 김영하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극은 경쾌하다. 제목에서 누군가 나팔을 부는 것과 같은 브라스 음악의 이미지를 느꼈다는 고선웅 연출은 원맨 브라스 밴드와 막춤을 극의 주요 장치로 썼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브라스 음악과 춤은 중독성이 강하다. 공연장을 나서도 한참동안 색소폰 소리가 따라 다닌다.

극은 제목처럼 오빠가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0대인 동거녀까지 데리고 온 오빠는 당당하다. 어릴 적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아빠의 폭력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맞선다. 게다가 택배회사 직원으로 경제력까지 갖추면서 가장 행세를 하려 든다. 하지만 아빠가 호락호락할 리 없다. 오빠의 귀가 소식에 엄마도 단숨에 달려온다. 이제 이들 사이의 먹이사슬이 분명해지는 일만 남았다. ‘경제력’에 의해 이동하는 가족의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딸 경선의 내레이션)“다른 집은 담 타넘어 가야 되는데 가족은 그냥 문 따고 들어오잖아. 그러니까 언제든 변심하고 작심하면 일낼 수 있어. 무서운 거지.”(아빠 이봉조의 대사)

이번 무대는 무엇보다 생생한 캐릭터 열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한위와 황영희의 몸에 밴 능청 연기가 압권이다. 되바라진 10대 류혜린과 껄렁거리는 이신성도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7월 1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전석 3만5000원.

▶문의=02-766-6007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사진제공=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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