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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있는 책읽기] 자유 위한 투쟁은 멈출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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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그린비, 368쪽, 1만2000원

“현재 고통의 눈 먼 태양은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그 빛은 온 나라를 내리쬔다. 그 무자비하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모든 웃음은 가식일 뿐이고, 모든 얼굴은 공포와 분노를 숨기고 있으며, 모든 행동은 우리의 혐오와 공모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장 폴 사르트르가 초판에 붙인 서문 중

프란츠 파농은 몰라도 알베르 카뮈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 카뮈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뫼르소라는 청년이 ‘태양에 눈이 부셔’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사형집행일에 사람들이 구경 와주길 희망했다는 대표작『이방인』의 줄거리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이 부조리한 실존주의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독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청년의 심리에 공감하려고 애써 보지만 결국 ‘정말 부조리한 작품이야’라며 책을 집어 던지게 된다.

그러나『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읽는 순간, 뫼르소의 살인은 전혀 이상하지도 부조리하지도 않은 사건으로 변모한다. 저자 프란츠 파농이라면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살인사건이 벌어진 곳이 알제리이고, 살해당한 사람이 알제리 원주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당시 알제리는 아름다운 태양과 지중해의 푸른 빛, 올리브 향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카뮈의 작품을 탐독하던 청소년 시절 나는 알제리가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프랑스의 아름다운 지방 이름인 줄 알았다. 물론 어떤 견해에 따르면 알제리는 단순히 프랑스의 식민지라기보다는 프랑스 공화국의 한 영역이다. 알제리 인구의 5분의 1이 유럽인이고 그들 중 절반은 카뮈처럼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파농이 전하는 진실은 이와 다르다.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의 혼란을 틈타 그곳을 강압적으로 점령했으며 1843년엔 일방적으로 프랑스령으로 선포했다. 프랑스인들은 아랍계 알제리 원주민들을 열등한 종족으로 규정하며 가혹하게 대했다. 알제리에서 인종은 계급이었다. “백인이기 때문에 부자이고 부자이기 때문에 백인인 것이다.”이주민의 부유촌과 원주민의 빈민촌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경계를 넘어 이들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극히 사소한 이유로도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파농의 설명에 따르면, 『이방인』 속의 살인사건은 부조리한 실존의 절규가 아니라 식민지 알제리의 평범한 일상이었던 셈이다. 1945년 알제리의 도시 세티프에서 원주민 4만5000명이, 마다가스카르에서는 9만 명이 학살당했다.

이 책은 알제리가 독립을 쟁취하기 한 해 전인 1961년에 쓰여졌다. 그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식민지 억압과 학살에 맞선 인간적 투쟁을 자기 손으로 기록하고 싶어했다. 이 책은 식민화가 예속 당한 이들의 정신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또 탈식민화 투쟁이 어떻게 훼손된 자아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가 가장 힘주어 말하는 것은 “당신들이‘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면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것 또한 당신들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저주에서 벗어나는 그 과정에서 식민상태보다 더 큰 고통이 뒤따를 수 있고, 또 독립 이후에도 험난한 가시밭길이 오랫동안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담대하고 우렁차다. 모든 해방의 과정은 열등감과 좌절을 치유하는 창조적 과정이며, 이 위대한 작업을 완수하기 전까지 자유를 위한 투쟁을 결코 멈출 수 없다고. 굳이 알제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의 식민지 경험과 이후 현대사의 진행과정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농에 감화라도 된 듯 카뮈는 마지막 소설 『최초의 인간』(1960)에서 알제리를 완전히 독립시키고 프랑스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은근히 나타냈다. 그러나 ‘어떤 민족도 식민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자명한 진리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자명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카뮈가 공격받을 것을 두려워한 유족들은 이 유고를 1995년에 이르러서야 출간했다. 파농과 카뮈의 주장이 프랑스에서 대중적 공감대를 얻기까지 무려 35년이나 걸린 것이다.

진은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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