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심검문 개정안’, 인권 침해 소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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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80년대 권위주의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겐 불쾌한 추억이 하나 있다. 불심검문(不審檢問)이다. 당시 시민과 대학생은 길 위에서 경찰의 소지품 검사를 종종 당했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라는 존칭어로 시작하지만 마치 죄인이나 된 듯 가방과 핸드백을 순순히 열어야 했다. ‘경찰관이 거동이 수상한 자를 발견한 때 이를 정지시켜 질문하고, 일정한 요건 하에 동행 요구와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제3조에 근거했다. 범죄 예방이라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주로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한 편법이었다. 요즘엔 법적으로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인권의식이 높아진 탓에 불심검문이 크게 줄었다.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경직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법에서 ‘검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삭제하고, 소지품과 차량 등 적재물 검사를 과도하게 강화했기 때문이다. ‘범인 검거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경찰이 시민의 소지품뿐 아니라 자동차의 내부와 트렁크, 적재물을 검색할 수 있는 길과 대상을 크게 넓혀 놓은 것이다. 신설된 ‘신원확인’ 조항은 검문대상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신분증이 없는 경우엔 지문 채취나 연고자를 통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영장주의를 거스르고, 신체와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경찰이 살인 등 강력사건 용의자를 보고 검문하려 해도 “경찰이면 다야”라며 이에 불응하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불법 폭력 시위에 죽창·화염병·새총이 동원돼도 이를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도 경찰의 고민이다. 개정안은 이런 측면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심검문이 강제절차가 아니라 대상자가 거부할 수 있는 임의절차임을 명백히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국회는 경찰행정의 현실적 필요성과 인권보호를 모두 아우르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손질하길 바란다. 범죄 예방도 중요하지만 인권은 더 큰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