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장길수군 새해소망] "성공해 북한 부모님 모셔올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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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반드시 성공해 북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와 함께 살고 싶어요."

새해를 누구보다 남다른 마음으로 맞는 탈북소년 장길수(17)군의 소망이다.

1999년 1월 두만강을 건너 2년반 만인 지난 6월 남한에 안착한 그다.

함께 온 형 한길(19).외할머니 김춘옥(67).외삼촌 등 네명과 함께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마치고 10월 초 서울 양천구의 20평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입국 후 처음으로 30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한 그는 북한 공작원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베이징(北京)의 유엔고등판무관실에 난민지위 신청을 내기까지의 순간들을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함께 손잡고 북한을 탈출했다가 지난 3월 끝내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어머니(46) 얘기를 할 때는 목이 메기도 했다. 어머니는 현재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수군이 밝힌 그의 일과는 바쁘기만 하다.

"내년에 남한의 고교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두시간씩 검정고시학원과 컴퓨터학원에 다녀요."

아침과 저녁시간에는 지하철역.아파트단지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하러 뛰어다닌다고 했다.

전단지 일감이 없는 날은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아 한달에 50만~60만원을 손에 쥔다.

길수군이 이렇게 아르바이트에 열심인 이유는 북송된 어머니,그리고 탈북 당시 북에 남았던 아버지.큰형과 함께 살고 싶어서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 어떻게든 모셔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정부에서 준 3천여만원의 정착지원금도 그래서 "한푼도 안쓰고 은행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석달째 학원에 다니면서 배운 실력으로 길수군은 여느 남한 청소년처럼 스타크래프트 등 컴퓨터게임에 능숙하다. 지난달엔 개인 컴퓨터도 한대 샀다.

하나원에서 사귄 또래의 친구들과 얼마전 부산과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남한 사회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틈나는 대로 서울거리를 돌아다닌다.

"해를 넘기는 요즘 부모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는 길수군은 "다같이 행복하게 살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해 꼭 대학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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