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혼가정 두번 울리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여성부가 서울대 법학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혼 후 자녀 호적은 양육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데 응답자의 77%가, 재혼시 여성이 동반한 자녀에 대해 새아버지가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한다면 친부의 동의없이 계부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데 71.5%가 찬성했다고 한다.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되는 자녀들이 사회적 제도 때문에 다시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하려면 현행 호적제도의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다.

이제 이혼과 사별, 그리고 재혼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5만건을 넘지 못하던 이혼건수는 2000년엔 12만건을 기록, 세쌍이 결혼할 때마다 한쌍이 파경에 이르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고, 암.돌연사 등 젊은 나이에 가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부모의 재혼으로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형제간에도 성이 다를 수밖에 없고,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길러준 계부(繼父)를 생면부지의 타인관계로 몰아붙이는 것이 지금의 법현실이다.

국회에는 이미 올 초부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민법 개정안이 정부안.최영희 국회의원안(민주당) 등 2개나 법사위원회에 제출돼 있지만 연말을 코 앞에 두고도 감감소식이다. 고작해야 내년 1월에 공청회를 열겠다는 정도다. 선거를 앞둔 각 정당이 이 법안에 대한 정치적인 득실을 따지고 있는 동안 수많은 어린이의 가슴엔 깊은 멍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민법 개정안 가운데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어머니가 양육권과 친권을 가지고 재혼한 경우 새아버지의 성을 쓸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정식 법안 마련 이전에라도 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국회는 차일피일 시간만 끌지 말고 재혼가정의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제도적 구제방안을 한시바삐 마련하기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