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보재정 혼란 방치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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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이 건강보험 재정 분리를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엊그제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킴에 따라 정부가 의료개혁의 하나로 추진해온 건보 재정 통합 정책이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이에 정부와 민주당은 예정대로 통합 절차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 반면 야당측은 내년 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어서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누차 지적했듯이 직장.지역 건보 가입자들간의 형평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선 건보 재정은 분리 운영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법안을 처리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당당함과는 거리가 있다.

백번 양보해 당론과 다른 입장을 고수한 의원을 교체한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 계류시킨 채 본회의 처리를 내년으로 넘기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법안 처리 지연으로 생기는 국정 혼선과 국민이 겪을 혼란을 생각한다면 원칙대로 당장 본회의에 넘겨 연내 처리하는 게 옳다.

담배부담금(10%) 지원을 규정한 건보 재정 건전화 특별법 처리 지연으로 월 5백50억원씩 건보 재정에 차질이 생기는 만큼 이 법안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

정부는 지역과 직장 건보를 통합하면 부자조합이 가난한 조합을 도움으로써 재정이 건전하게 되고 국고 지원 없이도 보험 혜택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로 건보 재정 통합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이미 지난해 7월 직장과 지역 건보 조직을 통합했고 내년 1월 재정 통합을 이룬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건보 재정 상태는 어떤가. 무리한 의약 분업 시행에도 큰 원인이 있지만 직장.지역 건보 모두 재정이 거덜나 올해만 해도 적자가 1조8천여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더구나 국고 지원은 오히려 늘어났다.

정부가 지난 5월 건보 재정 안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지역 건보에 대한 정부 지원율을 28.1%에서 50%로 대폭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직장 건보 가입자의 소득은 유리알처럼 노출돼 있는 데 비해 지역 건보의 경우 소득 파악률이 30%선에 불과한 상황에서 재정 통합을 추진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보건복지부측은 정부 지원으로 내년부터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는 지역 건보 재정으로 직장 건보를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통합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파탄 상황에서 무작정 정부가 지원만 한다면 건보 재정의 자립성은 영원히 물건너 간다. 이야말로 포퓰리즘의 표본이다.

두 재정의 분리로 경쟁적 건실화를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연간 6천6백억원으로 예상되는 담배부담금이라도 지역과 직장 건보에 나눠줘야 한다. 그래야만 직장인들을 상대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방만한 건보 조직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쪽으로 정비돼야 한다. 현재의 통합 조직을 한꺼번에 분리하는 데는 부작용이 따르는 만큼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분리,직장과 지역 건보 조직이 주인 의식을 갖고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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