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2박3일간 영국을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오후(한국시간) 공식 환영식과 여왕 주최 오찬.만찬 참석을 시작으로 첫날 일정에 돌입했다. 영국이 상.하반기 한 번씩으로 국빈 방문을 제한하는 데다 한국 대통령의 첫 국빈 방문이어서 과거 대영제국의 영화와 위엄을 보여주는 장엄한 의전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 최신 마차로 버킹엄궁행=기마 근위병 교대식 장소로 유명한 호스 가즈(Horse Guards)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군 에든버러 공, 토니 블레어 총리는 물론 잭 스트로 외무.데이비드 블렁킷 내무장관 등 주요 각료와 3군 참모총장 등 영국의 지도층이 대거 참석했다. 찰스 왕세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국 왕실 관계자는 "국가 원수가 아니라서 국빈 만찬에만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국 의전 서열 5위인 에드워드 왕자 내외가 노 대통령의 숙소인 힐튼호텔로 찾아가 행사장까지 동승하는 예를 갖췄다. 여왕의 입장과 영국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 연주에 이어 노 대통령 일행의 차량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국빈 방문에 적용되는 41발의 예포가 발사됐고 애국가가 연주됐다. 국가 원수의 업무 방문엔 21발, 여왕의 생일엔 61발이 발사된다.
노 대통령이 200여명의 영국 왕실 의장대를 사열하면서 환영 행사는 정점에 이르렀다. 의장대장은 노 대통령에게 한국어로 사열 준비가 됐다고 보고했고 에든버러 공이 노 대통령을 안내했다.
사열에 이어 로드 베스티 기병대장의 안내로 노 대통령과 여왕이 통역원 한 명과 함께 여섯 마리의 백마가 끄는 1호 마차(코치)에 탑승했다. 난방 장치, 자가발전, 자동 창문 개폐장치를 갖춘 모델로, 호주가 선물한 영국 왕실의 최신형 마차다. 권양숙 여사와 에든버러 공은 네 마리 백마가 끄는 2호 마차에 타 여왕 주최 오찬 장소인 버킹엄궁으로 향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 등 공식 수행원 13명도 나머지 다섯 대의 마차에 분승했다.
버킹엄궁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국빈 방문 초청에 대해 여왕에게 사의를 표했다. 또 1999년 4월 여왕의 방한 당시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에피소드 등을 화제로 대화했고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국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 의사를 전했다. 여왕은 이 자리에서 외국 국가원수에게 주는 영국의 최고 훈장인 '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GCB)'를 노 대통령에게 줬다. 노 대통령과 함께 반 장관 등 우리 측 공식수행원 전원에겐 버킹엄궁의 '왕실 손님' 자격이 주어져 옷다림질과 세탁을 해주는 왕실 시종관(personal maid)이 각각 배치됐다.
◆ "DJ 덕분에 대접 잘 받아"=노 대통령은 환영식에 앞서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열린 동포 200명과의 간담회에서 "국빈 방문을 하자기에 격식과 절차가 까다롭고 골치 아픈 걸 왜 하느냐고 했다"며 "그랬더니 외교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리 애를 써서 맞춰놓은 건데 안 간다니 말이 되느냐'고 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왔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좋은 것도 남기고 나쁜 것도 남겨준다"며 "내 전임만 얘기 드리면 한국의 행정.정치가 가져야 할 기본틀, 인권이나 사회복지, 역사 문제의 기본 틀은 마련해 자리를 잡아줬다"고 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와 북핵을 푸는 데 있어서도 큰 방향을 잡아 세계 지도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며 "그 덕분에 내가 해외에 다니며 대접을 잘 받는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2일 오후 블레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