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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金대통령의 침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종반기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야 하는가.진승현 게이트를 파헤칠수록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비리의 사연들로 국정 전체가 혼란스럽다.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의 1억원 수뢰 의혹, 진승현 리스트에 몸통 존재설, 4.13 총선 때 정치자금 제공설, 김홍일 의원 이름의 돈봉투 살포설 등 온갖 설(說)이 뒤엉킨 채 의혹의 덩치는 커가고 있다.

여기에다 김홍업씨가 제기한 '특정 집단의 물귀신 작전',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의 검찰 수사 방해 혐의는 권력 기관간 암투설을 새롭게 증폭시키고 있다.

파문의 방향이 과거 김영삼 정권의 임기 말을 떠올릴 만큼 권력 핵심 쪽으로 치닫는 조짐마저 있다. 金대통령이 다져온 국정 전념의 뜻을 실천하기 힘든 상황 전개다.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 함께 민생과 경제 회복.월드컵 개최.내년 양대 선거관리에 치중하겠다는 DJ의 구상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3대 게이트,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 브로커, 아태재단 출신 인사의 이권 개입 등 끝없는 권력형 부패 의혹들로 인해 공권력은 신뢰를 잃었고 국정은 방향타를 잃었다는 느낌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사정.정보기관에 대한 통제력 상실, 민심과의 거리감 속에 金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金대통령은 지난 12일 귀국 후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이제 金대통령은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비장한 결심과 함께 구체적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방향은 먼저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와 처벌이다. 金대통령의 주변으로 꼽히는 권력 핵심기관과 관련 정부 인사.민주당 실세들의 행적을 새롭게 점검, 확인해야 한다. 부패의 환부가 있으면 단호하게 도려내야 한다.

특히 검찰과 국정원,국정원과 경찰,그 내부에 퍼진 갈등과 알력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지금같은 공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테러없는 월드컵 개최, 지방선거.대선의 공정한 관리 문제를 꺼낼 수 있겠는가. 그만큼 공권력 쪽의 인사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게 국민적 판단이라는 점을 金대통령은 인식해야 한다.

지난 1년간 여러 게이트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해 국정을 불신덩어리로 만든 검찰은 면모 일신의 새 진용을 짜야 한다. 수지 金 피살사건, 최종길 교수의 타살 의혹 등 과거 정권 때의 치명적인 권력 탈선을 씻고 국정원도 거듭나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권력의 쇄신 그 다음은 전면적인 개각이 단행돼야 한다. 이한동 총리를 정점으로 한 내각의 정책 운영 능력은 권력 비리 의혹의 덫에 걸려 한계에 부닥쳤다고 본다.

지난 1년간 金대통령의 내각 개편이 땜질식이었다는 평판 탓에 이번만큼은 과감한 개편으로 여론에 부응해야 한다. 金대통령이 침묵을 끝내고 쇄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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