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가로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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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11면

초승달이 샛별을 품은 초저녁 하늘입니다. 해가 서산에서 멀어질수록 달과 별이 더욱 밝아집니다. 맑은 어둠이 끝없이 열린 하늘에 피어난 초절정 절제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찌릅니다. 대개 이런 분위기에서는 괜한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꽃은 피고 지며 한살이를 마무리합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우리 앞에 펼쳐지는 많은 것들의 한살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아직 한살이를 완성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의 한살이는‘돌아감’으로 그 과정을 끝냅니다. 아직 살아있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그저 한살이의 과정일 뿐입니다.

얼마 전 아는 스님과 곡차를 나누던 중 스치며 지나간 말씀이 떠오릅니다. ‘해탈을 고민하지 마라, 돌아가면 다 해탈이다.’ ‘원수는 사랑하지 말고 그냥 잊어라’. 한살이의 과정을 고민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생각이 깨져야 또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생뚱맞은 가로등에 달과 별을 가두니 가로등 빛이 어둠 깊은 하늘과 땅을 밝힙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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