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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디자인 5년, 국제 광고계를 뒤흔드는 이 남자 박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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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대표는 작품도, 스타일도 강한 게 좋아 머리까지 면도칼로 밀었다고 한다. 뒤는 지난해 8월 서울 논현동 두산건설 사옥의 한 면을 거대한 책장으로 바꿔놓은 옥외 광고로 올해 뉴욕 원쇼의 수상 작품이다.

지난해 박서원(31)씨를 한 차례 인터뷰했다. 직원 20여 명인 조그마한 광고회사 대표인 그를 만난 건 순전히 놀라운 창의성 때문이었다. 그가 광고제에 출품한 첫 작품은 국제 5대 메이저 광고제에서 12개의 상을 휩쓸었다. 한국인 역대 최다 수상이다. 1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2대 광고제의 최우수상과 본상을 탔다. 2연패 역시 역대 최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그룹 회장의 장남이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이를 철저히 숨기려 했다. 그런 그가 궁금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빅앤트 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칸막이가 전혀 없는 이곳엔 운동기구와 각종 상장 및 트로피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일터’라기보다는 ‘놀이터’ 같았다. 박서원 대표는 두 시간여 동안 작품 세계와 창의력의 원천, 그리고 방황하던 젊은 시절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끊임없이 믿어주는 아버지에겐 항상 미안해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다음엔 잘할 거지’라고 믿어주셨죠. ‘네’라고 대답하고, 또 공부는 안 했죠. 보통 세 번 거짓말을 하면 양치기 소년인데 아버지는 저를 계속 믿어주셨어요.”

그런 아버지가 요즘엔 트위터로 아들 자랑하느라 열심이다. 아버지는 ㈜두산의 박용만 회장이다.

“‘박용만 회장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제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 광고제에서 상을 15개 받을 때까지는 절대 트위터에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요. 상을 15개 이상 탄 뒤부터는 굳이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어요.”

그는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땐 반에서 53명 중 50등이었다. 싸움도 곧잘 했다. 나이트클럽에 살다시피 했다.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맥주·기본 안주가 5만원이었다. 그런데 한 달 용돈이 5만원이었다. 공부 안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님께 나이트클럽 비용을 달라고 손을 벌릴 순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친구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이 얘기는 지금까지도 부모님께는 비밀이다.

한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갔지만 경영학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성적에 맞춰서 간 것뿐이었다. 강의실에 가는 대신 여행하러 다녔다. 첫 학기에 이어 두 번째 학기도 학사경고를 받자 2000년 도망치듯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시간대 경영대로 옮겼다. 적성을 찾아보려고 매년 전공을 바꿨다. 사회학과·심리학과·기계공학과…. 3년이 또 의미 없이 지나갔다.

“재벌 2세라는 선입견 이 너무 싫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일부러 방황했던 것 같다. 경제적 걱정은 안 해도 됐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

“난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친해지고 싶은데 그쪽은 나중에 보니 뭔가를 나에게서 바라더라고요. 그렇게 상처가 늘다 보니 자신을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고 싶었어요. ‘화분 속에서 자란 잡초’를 스스로 선택했던 거죠.”

미국에서도 접시닦이, 세차장 직원 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인생을 바꾼 시각디자인과의 만남은 우연히 찾아왔다. 함께 농구를 하던 일본인 친구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보니 식음을 전폐하며 종이로 우주선을 만들고 있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친구의 프로젝트였다. 꼭 노는 것처럼 보였다. 공부가 노는 것이라니 흥미가 확 당겼다. 다음날로 바로 시각디자인 강의를 들었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 26세인 2005년 ‘뉴욕 스쿨오브 비주얼 아트(NSVA)’로 옮겼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미술 공부를 하려니 밤을 새워야 했다. 교수가 내주는 숙제의 10배를 해갔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니 대신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 모든 전공과목은 A+였다. 대부분의 교양 수업에서도 A를 받았다. 재학 2학년 때인 2006년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4명을 유심히 봐뒀다가 설득해 모았다. 집에서 프로젝트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 작업이라고 하기엔 작품이 너무 좋았다. 수익도 나왔다. 자연스레 빅앤트를 설립했다. 미국 뉴욕에 만들었던 사무실이 서울과 중국 베이징으로 늘었다. 직원은 한국·미국·프랑스·중국인 등 ‘다국적 군단’이다. 그동안 받은 상은 올해까지 35개를 넘어선다.

[1] 크리넥스 두루말이 화장지 걸이. 양의 껍질을 벗기듯 화장지를 뽑아 쓴다. [2] ‘천지창조’를 절묘하게 응용한 성형외과 광고. [3] 소비자가 로고를 찍어서 쓰는 DIY 방식의 ‘보그 쇼핑백’. [4] CGV 화장실 전면에 설치했던 소주 ‘처음처럼’의 광고. [5]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의 포스터. 박서원 대표는 이 뮤지컬의 무대 영상 감독도 맡았다.

가장 고민됐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쓸데없는 자신감이 내 재산이에요. 한국 대학에서 자퇴하고, 미국에서도 3년 동안 전공을 못 찾았을 때도 ‘그래도 난 성공할 거다’라는 대책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돌아보면 다행이죠. 당시엔 실패로 볼 수 있지만 그 실패가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테니깐요.”

현재의 성공이 ‘아버지의 후광’ 때문은 아니란다. “두산 작품은 대부분 일반 작품보다 가격이 낮거나 공짜로 해주고 있어요. 내가 좋아서 두산 작품을 해주고 있지요.”

요즘 개인시간의 절반을 학생 가르치는 데 쓴다. 한양대와 중앙대에서 겸임교수로 일주일에 10시간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물어요. 디자인에 여러 분야가 있는데 어떤 것을 하는 게 좋으냐고.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일단 해보고 맞지 않으면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고.”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영화 연출에도 발을 뻗쳤다. 30분짜리 단편 영화다. 시나리오는 직접 쓰고 있다. 꼭 필요한 뭔가가 없어진 사람들의 얘기라고 한다. 사진작가인데 눈먼 사람, 요리사인데 미각을 잃은 사람 등. 가을쯤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에선 배우로도 데뷔한다. 애초엔 디자인·광고를 진짜 잘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꿈을 이룬 지금, 목표가 더 커졌다.

“어떤 업무가 주어져도 잘하는 회사, 모든 창조적 작업을 잘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지영 기자 , 사진= 박종근 기자



만큼 놀았다 다양한 경험이 아이디어의 원천
미친 듯 일한다 하루 4시간 취침 … 직원이 가족

박서원 빅앤트 대표는 흔히 말하는 ‘재벌 2세’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와 담을 쌓았지요. 그런 그가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디자인 공부를 시작해 4~5년 만에 세계 국제광고제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의 창의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좋은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의 신조입니다. 직원 10여 명의 조그마한 조직이 한국의 어느 광고회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는 비결은 이렇습니다.

# 아이디어는 ‘미쳐야’ 나온다

빅앤트 직원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집에 가지 않습니다. 박 대표 자신도 매일 새벽 4시까지 머리를 짜내다가 퇴근합니다. 다음날 오전 10시만 되면 회사에 나옵니다. 박 대표는 “잠은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박 대표가 “새벽 4시 전에 불 꺼진 게 최근 한 달 동안 두 번”이라고 하자, 옆의 직원이 “한 번인 것 같은데요”하고 끼어듭니다. 이런 노동 강도를 버티는 사람은 정말 그 일에 미쳐서 하는 거겠죠. “광고제 입상이 널리 알려진 후 한 해 4000~5000명이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고 e-메일을 보내옵니다. 그러면 와서 근무해 보라고 하지요. 하루 일해보곤 다음날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박 대표의 말입니다.

# 정반대의 프로세스(과정)

박 대표는 기존 광고회사의 프로세스를 뒤집었습니다. 작품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만들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광고주는 나중에 찾습니다. 지난해 국제광고제 상을 휩쓸었던 ‘뿌린 대로 거두리라’ 포스터는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CGV 화장실 광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장실 벽을 광고 매체로 활용해 보면 멋질 텐데’라는 생각으로 광고를 먼저 만들고 CGV를 접촉했습니다. 공동작업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보통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이 밤새워서 짜낸 아이디어 시안 200~300여 장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하나하나 함께 토론하며 훑어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빼고, 조금이라도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을 남기면 10여 개가 남는다고 합니다. 이를 박 대표가 신문사의 에디터처럼 이렇게, 저렇게 수정해 보라고 지시합니다.

# 기존과는 다른 조직

창의성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빅앤트 직원은 거의 24시간 함께 생활합니다. 박 대표가 어느 날 밤 12시쯤 빨리 퇴근하라고 하고 약속 모임에 들렀다가 새벽에 다시 사무실로 왔습니다. “직원들이 집에는 가지 않고 사무실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더라”고 합니다. 빅앤트를 처음 만들었던 5명 역시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출신으로 ‘죽을 때까지 함께 가기로 한’ 끈끈한 동창 관계입니다. 이 회사는 일거리가 많아진 후 20여 명이던 직원을 오히려 10여 명으로 줄였습니다. 빠른 의사소통과 민첩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박 대표는 생각이 떠오르면 잊을까 봐 그때그때 적습니다. 아이디어가 막히면 옛날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 쭉 써본다고 합니다. 그걸 그림으로도 그려봅니다. ‘놀 만큼 놀아본 다양한 경험’이 아이디어의 샘물인 셈이죠.



작품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세계 5대 광고제 휩쓸어

지난해 클리오·원쇼·칸·D&AD·뉴욕 광고제 등 세계 5대 광고제에서 12개 상을 휩쓸어 박서원 대표의 화려한 등장을 알렸던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 ’라는 제목대로 총구가 한 바퀴 돌아 자기 자신을 겨눈다는 컨셉트다. 지난해 12월 뉴욕과 워싱턴의 주요 지점 가로등에 붙어 눈길을 끌었다.

박서원 대표는 그동안 저비용으로 기발한 발상을 이용해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지난해 세계 5대 광고제를 휩쓴 작품은 반전 포스터였다. 가로등에 감으면 총구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모양으로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같은 개념으로 탱크·수류탄·비행기 버전을 만들어 변주를 줬다.

CGV 영화관 화장실을 장식했던 소주 광고는 기존에 없던 화장실 전면 광고라는 새 영역을 개발했다. 화장실 문을 떼어 내고, 냉장고 문 모양으로 문을 만들어 붙였다. 문을 열고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냉장고 속이다. 소주가 꽉 차 있다. 또 다른 화장실엔 박 대표를 비롯한 빅앤트 직원이 즐겁게 소주를 마시고 있는 사진이 실제 사람 크기로 붙어 있다.

성형외과 엘리베이터에 설치했던 옥외 광고. 미켈란젤로의 명화 ‘천지창조’ 속 신이 아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갖다 대는 검지를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붙여 놓았다. 포스터 아래엔 ‘다시 태어나세요(Be Born Again)’라는 글귀가 써 있다. 성형외과로 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유머.

올해 뉴욕 원쇼 수상 작품은 지난해 8월 서울 논현동 두산건설 사옥의 한 면을 거대한 책장으로 바꿔 놓은 옥외 광고다. 거대한 책장 속에 두산 매거진이 발행하는 보그·GQ·보그걸·얼루어·W 등의 잡지가 진열돼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두산건설 창립 50주년 기념 포스터는 직원들과 함께 한 달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해 만들었다. 그린 것이 아니라 미니어처를 만들어 사진으로 촬영한 점이 이채롭다.

j 칵테일 >> 빡빡머리

박서원 대표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 거의 매일 면도칼로 머리를 민다고 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세보이잖아요. 작품도, 스타일도 강한 게 좋아요.” 머리를 면도칼로 밀기 시작한 지는 몇 년 됐다고 한다. 이런저런 헤어스타일을 다 해보다가 가장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지금의 스타일로 정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는 한때 허리에 약간 못 미칠 정도까지 머리를 기른 적도 있다고 했다. 처음 삭발을 해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유를 묻자 “그냥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 상 35개까지 세어보다

박서원씨가 지금까지 받은 상은 몇 개일까. 35개까지 세어보다가 멈췄다고 한다. 자신이 모르게 미국의 지도교수가 출품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상은 많이 탔지만 지금까지 가본 시상식은 두 번뿐이다. 프로젝트에 참석한 주요 임직원을 데리고 시상식에 한 번 참석하는 데만 2억여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박 대표는 “상만 타면 다 함께 멋지게 시상식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두 번밖에 못 지켜 미안하다”고 했다.

>> ‘박용만 회장의 아들’ 말 싫다

박서원씨의 아버지 박용만(아래 사진) 회장은 소문난 트위터족이다. 박씨는 아버지 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박 회장의 트위터엔 아들 서원씨가 가끔 등장한다. 박 회장은 “드라마 속 회장님은 아들 잡아오는 데 검은 옷 입은 직원을 시키던데, 난 내 손으로 ‘빨랑 안 오면 네 누드(어릴 때 목욕) 사진 트위터에 확 뿌려버린다’는 문자를 보낸다”고 쓰기도 했다. 밤늦게 귀가하는 아들에게 일찍 들어오라는 ‘협박’인 셈이다. 박 대표의 사촌형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박태원 두산건설 전무,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무도 트위터 대열에 가세했다.

>> 자랑스러운 아들로

최근 박서원씨의 광고제 2연속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이들의 트위터엔 박 대표의 수상을 축하하는 ‘멘션’(메시지에 댓글을 남기는 것)이 일제히 올라왔다. 박지원 사장은 이를 ‘리트윗’(트위터에 올라온 특정 멘션을 팔로어들에게 소개하는 것)해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관련 소식을 전했다. 박태원 전무는 “축하축하축하 계속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서원아.”, 박진원 전무는 “추카추카!!! 시상식에 그 수도승 옷 입고 가는 거야?”라는 글을 남겼다. 박용만 회장은 “쑥스…”라며 기쁨을 에둘러 표현했다. 박 회장은 아들이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고 국토 종단에 나선 사실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하지만 박서원 대표는 트위터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2~3일에 한 번 정도 트위터로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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