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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산부인과 의사 출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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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내가 원래 표정이 없어 얼굴이 차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이 잘 안 나오겠다며 한마디 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하지만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꽤 많이 웃었다. 한 시간으로 예정했던 인터뷰는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12층 회의실에서 1시간40분가량 이어졌다. 그 사이 비서는 원래 잡혀 있던 회의며, 선약이며, 전화 메모를 세 번이나 그에게 전달했다. 인터뷰는 본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와 남윤호 경제데스크가 함께 진행했다. 황 기자는 신창재 회장과 서울대 의대 동창으로, 진료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의사들의 모임인 경의회(경계를 넘나드는 의사회) 회원이다.


-1996년, 의사를 그만두고 교보생명 부회장을 맡으셨죠. 그때 교보의 장단점은 뭐라고 보셨나요.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죠. 그저 열심히 배웠어요. 처음 느낀 건 회사가 관료적이다, 대기업병이 상당히 심각하다 하는 거였어요. 상사와 부하 간 소통이 부족했죠. 또 고객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갔고요. 대신 일사불란하게 결집하는 응집력은 대단했어요. 축구팀 만들어 다른 회사와 붙으면 늘 5-0, 6-0으로 이기곤 했죠. 대충 그런 문화의 조직이었어요.

외형을 부풀리려 일명 ‘가라계약’이란 것도 성행했어요. 계약 10개 들어오면 진짜는 서너 개고, 나머지는 다 보험설계사들이 자기 돈으로 가입한 거예요. 인센티브 받곤 얼마 있다 해약하는 거죠. ‘보험회사는 설계사가 주요 고객인가’ 착각할 정도였죠.”

-지금은 기업문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어떻게 바꾸셨어요.

“사원들과 대화 기회를 많이 만들었어요. 운동회·등산도 하고, 맥주도 날라주고, 기타도 치고, 춤도 추고. 그리고 묻는 거죠. 뭐가 문제입니까, 뭘 개선해야 합니까 하며. 그렇게 풀어주면 사원들이 다 얘기해줘요. 그걸 듣고 하나씩 바꿔가니까, ‘얘기하면 되는구나’라며 점점 호응을 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4000명 사원 중 1000명의 선도그룹을 끌고 나가는 거예요. 그럼 대세가 쭉 따라오죠.”

-직원들 얘기를 듣고 회장님이 하나하나 직접 바꾸신 건가요.

“나는 인트라넷으로 제안을 받은 걸 다시 재배분하는 역할만 했어요. 내가 수렴해서 현업부서에 던지고, 부서에서 오케이하면 사원들이 신나는 거죠. 나는 현장에 밝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내가 중간에 끼면 좋을 게 없어요. 내가 무식하기 때문에…. 처음에 분위기만 띄워주고, 나는 싹 빠져야죠.”

-그런 건 누구한테 배우셨어요. 나는 빠져줘야 한다는 거. 대개 잘 못 빠지잖아요.

“아버님한테 배웠어요. 선친이 경영하실 때, 임원들이 아버님께 사실을 제대로 얘기 안 하더라고요. 또 사실을 얘기하면 ‘당장 그 사람 바꾸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니…. 그걸 보고, 조직 내에서 소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내가 망원경으로 산을 본다면, 사원들은 산기슭에서 나무 하나 하나를 아는 현장 전문가예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걸 내가 건드리는 건 좋지 않죠. 내가 영업을 직접 맡기 시작한 게 3년밖에 안 돼요. 그 전까진 영업은 안 건드렸어요. 그건 잘했다고 봐요. 카네기의 묘비명엔 ‘여기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 간 사람이 누웠다’고 써 있다고 합니다. 그게 리더입니다.

내 친구 중 천재가 회사를 경영했는데, 아주 어렵게 되더라고요. 천재이니 그 친구 혼자 다 결정을 했어요. 아무리 천재여도, 체력과 시간과 사고에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 기업, 망했어요.”

-선대의 경영 패러다임을 많이 바꾸느라 상당히 어려우셨을 텐데요.

“입던 옷을 물려받았는데, 아직 더 입을 만하지만 소매 길이를 조금 손봐야 하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지요. 모든 걸 부정하면 조직원이 호응을 안 하죠. 회사의 응집력, 정직 성실한 기업문화, 도전정신. 이런 회사의 장점과 전통을 집대성해서 ‘비전체계’라는 틀을 만들었어요. 비전전략을 제대로 따르고 기여를 많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보너스를 주고, 빨리 승진시켰죠. 또 고객지향·정직성실 같은 핵심가치가 투철한 사람을 리더로 쓰고. 인사를 통해 조직이 바뀌는 거죠.”

-교보생명도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한다면 언제 할 계획인가요.

“상황이 좋을 때 해야죠. 자본을 급히 확충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장상황 봐서 가장 회사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때 상장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



감성능력 발달 … 사원들이 ‘네’ 해도
진짜인지 아닌지 금방 ‘감’으로 알아

나는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가운데)이 18일 본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왼쪽), 남윤호 경제데스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신 회장은 적자 상태인 교보생명의 경영을 맡은 지 10년 만에 업계 순이익 2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변선구 기자]

-경영자로서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감성적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상당히 발달돼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의대에 가서 처음엔 정신과를 전공할까도 했어요. 분석력이나 계산은 그에 비해 좀 떨어지지만 전체적으론 균형이 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사원들이 ‘네’라고 할 때 그게 진짜 ‘네’가 아닐 경우, 금방 알아차립니다. 감으로요. 사실은 ‘아니요’인데 조직 문화상 ‘네’라고 하는 경우, 많잖습니까. 사원들이 내게 얘기하는 게 진실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안다는 거죠.”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TV 보는 게 취미예요. 주로 영화를 봐요. ‘투사부일체’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종격투기도 자주 본답니다. 집사람은 잔인하다고 하는데, 전 모든 걸 경영의 관점에서 보거든요. ‘투사부일체’에선 똘마니들이 어떻게 보스에게 충성하게 되는가를 해석하며 보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종격투기도 마찬가지예요. 권투 선수 출신이 레슬링 선수와 맞붙었을 때 레슬링 기술을 썼다가 지는 걸 보면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상대방 전략에 말리면 진다는 걸 새삼 확인하지요. ”

-건강은 어떻게 챙기십니까. 의사 출신이니 남다른 방법이 있나요.

“경영자들, 스트레스 많습니다. 이거 풀어야 하는데, 저는 운동 자주 하고, 음악도 들으며 풉니다. 특히 햇볕 쬐며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딱 정해놓고 걷는 장소가 있다기보다 이런저런 공원을 자주 걷습니다. 나무와 풀밭에서 나오는 공기가 좋잖아요. 세로토닌 워킹이라고 하지요. 차 타고 가다가도 좋은 길 있으면 내려서 걸어요.”

정리=한애란 기자
인터뷰=남윤호 경제데스크·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회사 일로 괴로워하던 모습 요즘 내 모습과 똑같아
선친에 대한 기억

-선대 회장님과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집에선 대화가 별로 없었던 아버지였죠. 주로 뵌 모습은 술 드시고 괴로워하시는 거, 회사에서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부어 말 걸면 싫어하시는 거. 요새 나하고 똑같아요. 1996년 회사에 들어오면서 아버님의 참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그 전엔 어떻게 저렇게 집안에 무심하실까. 왜 어머니만 야단치실까. 그래서 초등학생 때 아버님에게 ‘어머니에게 큰소리 그만 치라’며 항의하는 편지를 쓴 적도 있어요.”

-의대에 진학할 때 반대는 안 하셨나요.

“처음엔 공대 전기과에 가고 싶었어요. 어릴 때 무전기나 라디오·앰프 같은 거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한번은 사제총 만들다가 오발해서 다치기도 하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상대에 갈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지금부터 미국 가서 영어 배우고, 거기서 상대를 가라고. 내가 노(No) 했죠.”

-산부인과를 전공하신 특별한 사연은 있으세요.

“내과와 외과의 중간이에요. 수술이 외과처럼 길지 않고, 내과처럼 따분하지도 않지요. 아버님도 찬성했어요. ‘내과는 백날 가봐야 사람 고치지도 못하지만, 산과는 얼마나 기분이 좋으냐. 새 생명이 탄생하니’하며 말이죠.”

-멋이 있으신 분이셨네요.

“제 아버지, 멋쟁이예요. 내가 대학교 때 밴드 조직해 집 지하실에서 기타 치며 소리지르곤 했는데, 퇴근해서 들어오시다가 듣고 좋아하시던 분이에요. ‘저 꽁한 놈이 저런 거라도 하니까 참 좋다’고 하시더군요.”

-성격이 꽁하다는 말을 들으셨군요.

“아버지는 저를 사업 잘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죠. 내성적인데 어떻게 험한 사업을 하겠느냐, 성격이 활달하지도 않으니. 넌 장사 못 한다, 나중에 기회 되면 학교 교장 선생님을 해라, 그게 딱 맞다…. 이런 말 많이 들었어요. 마침 매형(함병문 서울대 의대 교수) 될 분이 의대생이셨거든요. 멋있어 보여서 의대로 진로를 정하자 아버지도 좋아하셨죠.”

-의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하셨는데, 의사로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의사로서 전문지식이 건강보험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에요. 건강보험이 상당한 손실을 내고 있는 걸 바로 알았고, 그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죠. 보험회사들이 건강보험을 많이 팔려고 보장액수를 경쟁적으로 올렸어요. 예컨대 제왕절개 수술 비용이 50만원이면 100만원씩 보장해줬죠. 그땐 모든 회사가 다 그랬는데, 교보생명이 먼저 빠져나왔죠. 내가 의사 출신이었던 게 도움이 된 거죠. 하지만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됐어요. 의사는 혼자 실력 발휘하 지만, 회사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게 관건이죠.”

▶ 신창재(57) 회장=교보생명 창업자인 고 신용호 명예회장(2003년 작고)의 장남. 경기고와 서울대 의과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교수(산부인과)를 지냈다. 의사 시절인 1993년 공익재단인 대산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았고, 96년 11월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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