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사제와 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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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제 만물이 뒤덮여 퇴색하려 합니다

안개 낀 나날이 불안과 근심을 일깨웁니다

폭풍의 밤이 지나면 아침에는 얼음 소리가 납니다

이별이 울고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합니다.

문학 속의 11월은 어쩐지 황량하다.황금색 가을을 노래한 헤세 역시 퇴색과 이별로 그의 '11월'을 떠나보냈다. 한 해가 한 달 남는다는 초조감으로 11월은 허전하게 보내기 십상이다. 날로 심해지는 정치판의 치매 증세나 겨울의 한기를 가늠해줄 경제지표도 오늘은 그만 잊기로 하자. 뭐 좀 넉넉한 얘기를 하고 싶다.

*** 여든의 노구로 배추 농사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장했어? 배추 뽑아가." 그 초단축 전화를 받고 지난 주말 서울 근교의 배추밭에 모인 일행이 50여명이었다. 열 포기면 된다고 사전 신고를 했지만, 내 몫으로 배추 열다섯 포기와 그만큼의 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에 따른 무상 분배였다! "배추값이 뭐 값이 되어 휘발유값도 안 나올 텐데" 하며 도리어 당신이 민망한 표정이었다. 말씀이야 그렇더라도 여든의 노구로 여름내 지은 농사를 그냥 가져오는 것도 도리가 아니어서, 즉석에서 모인 헌금을 학비 마련이 어렵다는 한 학생에게 보내기로 했다. 한 해의 노고가 한 젊은이의 장래를 돕는 작은 거름으로 뿌려지게 됐다.

1960년대는 가난한 시대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난은 그저 남루할 뿐 비굴할 이유가 없었다. 군사 정권의 개발 독재가 시작되면서 먼저 대학에 저항의 물결이 솟구쳤다. 캠퍼스 밖의 보호막은 종교였다. 하느님과 부처님이란 막강한 '빽'이 있고, 그 그늘로 공안 당국의 음험한 '색깔' 올가미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명동성당에서 한 사제를 만났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밖으로 나가서 불의와 싸우는 사회 참여에 있습니다." 그의 강론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제 발로 찾아온 학생들을 교회 안에 붙잡아놓는 대신 사회로 내쫓는(?) 그의 '첨단 신학'에 우리는 꽤나 반했었다. 당시 앙가주망 문학 얘기는 떠돌았지만, 해방신학이란 말이 나온 것은 한참 뒤였다. 그는 당시 서울대학 맞은 편 명륜동에 가톨릭학생회관을 지어 '아지트'를 옮기고는 그 물목에서 마구 그물질을 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동성고 동기인 그는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입학해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해방 공간의 소용돌이에서 하느님과 이데올로기의 치열한 갈등을 겪은 뒤, 프랑스 유학 중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가 하느님의 그물에 걸린 것은 하늘의 섭리겠지만 우리가 그의 그물에 걸린 것은 무슨 소이(所以)였을까? 은퇴한 사제로서 그는 이제 그물 대신 삽과 호미를 들었다. 늙으면 쉽게 서러워지는 법인데, 그 고독을 노동과 추수로 이겨내는 것이다. 당신의 수고로 기른 무와 배추를 나눠주면서 내심 "너희에게 짐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내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아" 하고 다짐하는 듯했다. 은퇴한 사제에서 현역 농부로! 그는 멋지게 늙는 법을 가르치고 계셨다.

밭머리 식당에서 드린 미사에서 그는 농부의 깨달음을 전했다. "예전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 아주 근사하게 들렸는데,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은 존재한다. 고로 나도 존재한다'고 느껴집디다." 중세 같으면 단연 종교재판 감인데, 땅과 땀의 변증법을 통해 사유와 자연이 하나가 된 것일까? 앙상한 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 몇개를 기어코 장대로 떨어내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그렇게까지 할 것이 무엇이냐고 내쏜 적이 있다.

요즘 낙엽은 잘 썩지 않기 때문에 한데 그러모아 태우려고 그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성비가 낙엽을 썩이는 미생물을 죽여버려 낙엽이 거름이 되는 자연의 질서가 망가진다는 기사를 어디서 읽었다. 낙엽조차 썩지 못하고 화장 당하는 억지 시대이기에 노사제가 실천하는 흙과의 화해와 교섭이 한층 고귀하게 다가온다.

*** 멋지게 늙는 법 가르쳐

"신부님, 배추값 걱정은 그만하시고 영혼 구할 걱정이나 하십시오."

"이런, 너희가 잘살아야 내 낚시질이 쉬울 것 아니야."

배추밭에서 낚시질을 생각하는 그 나상조(羅相朝) 신부님은 벌써 내년의 추수를 계획하고 계셨다. 11월의 퇴색과 이별이 그토록 황량하지 않은 것은 새 봄의 채색과 재회에 대한 기약 때문이리라.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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