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내 깡패 같은 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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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정유미의 연기 호흡이 돋보인 신인 김광식 감독의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JK필름 제공]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욕설이 나와도,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이 나와도, 칼로 사람을 푹푹 찌르는 험한 장면이 나와도 뒷맛은 개운하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넣을 재료 다 넣고 낼 맛 다 내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단골식당 음식 같다. 큰 뼈대는 ‘별’ 달린 전과자 남자와 지방대지만 석사학위까지 있는 여자의 애틋한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깡패와 회사원 여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얘기하는가 하면, 구직난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의 아픔도 한 자락 끼워 넣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슬며시, 넌지시, 그러면서도 야무지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동네 깡패 동철(박중훈)의 반지하방 옆방에 세진(정유미)이 이사 온다. 세진은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해 취직하지만 회사가 석 달 만에 부도나 실업자 신세가 된다. 최악의 구직난 속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지방대 출신인 그에게 면접관은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불러보라”는 황당한 주문이다. 동철은 “형님 대신 감옥 다녀오면 ‘차세대 에이스’ 만들어주겠다”는 조직의 약속을 믿었지만 그의 충성에 조직은 아무 보답도 해주지 않는다. 동철은 시시한 동네건달일 뿐이다.

그런 두 갑갑하고 지리멸렬한 인생이 마주쳤다. 티격태격하다가 어느새 가까워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구태의연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코미디의 귀재’로서 박중훈의 화려했던 과거를 알고 싶다면, 그가 25년 가까이 한국영화계에서 거뜬히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는 그 답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세진 역의 정유미도 빛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율동을 곁들여 ‘토요일 밤에’를 부르는 장면은 그가 구현해낸 ‘평범 속 비범’의 최고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궁금해지는 사람은 각본·연출을 맡은 신인 김광식 감독이다. 그가 정성껏 매만진 캐릭터 덕에 배우들은 맘껏 놀 수 있었다. ‘교육방송을 보는 깡패’라는 설정은 동철의 캐릭터를 마초 일변도의 조폭 캐릭터와 확실히 구분해 준다. 다시 궁금해진다. 세차장에서 재회한 동철과 세진은 과연 맺어졌을까. 제발 그랬기를.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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