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8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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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원래 곡예를 하고 있는 사내는 성 안으로는 출입할 수 없는 천민이었다. 성 안은 두품(頭品)이상의 귀족들만이 살고 있는 특별구역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성 안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무료를 달래줄 수 있는 유희가 필요하자 이처럼 특별한 공연을 성 안에서 할 것을 허락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악공(樂工)들로 척(尺)이라고 불렀는데, 춤추는 자는 무척(舞尺)이라고 하였으며, 노래하는 자는 가척(歌尺)이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김양은 금공을 굴리는 곡예를 보면서 문득 자신이 그 사내의 손에 들린 금환(金丸)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내의 노래처럼 몸을 돌리고, 팔을 휘두르는데 따라서 달처럼 구르고, 별처럼 구르는 금공.

한바탕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가면극이 시작되었다. 꼽추 모습을 한 무척이 임시로 만든 가발까지 머리에 얹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은 함께 웃기 시작하였다. 그 춤 역시 그 무렵 대유행을 보이고 있었던 가면극이었던 것이었다.

술 취한 꼽추가 술잔을 들고 마시다가 마침내 취해서 주정을 부리는 취희극(醉喜劇)으로 사람들은 꼽추가 비틀거릴 때마다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가척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가척이 부른 노래의 가사가 최치원의 시로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높은 어깨 움츠린 목에 머리털 일어선 모양.

팔 걷은 여러 선비들 술잔 들고 서로 싸우네.

노랫소리 듣고서 사람들은 모두 웃는데.

밤에 휘날리는 깃발, 새벽을 재촉하누나."

구경꾼들은 모두 배를 잡고 웃고 있었으나 이를 숨죽여 지켜보던 김양만은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발을 머리에 얹고 술 취해 비틀거리면서 주정하는 꼽추가 바로 자신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다.

엽전 하나를 춤추는 광대들 앞에 던지고는 김양은 다시 혼자 걸어가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절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으로 던져지는 금환도 아니며, 자신의 진면과는 상관없이 가면을 쓰고 사람을 웃기기 위해서 춤을 추는 병신 꼽추는 더더욱 아니다.

두고 보라.

김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반드시 되돌아올 것이다. 왕경으로 되돌아와 잃었던 선대로부터의 대택을 다시 찾고, 금의환향하여 태종 무열왕으로부터 내려온 가문의 광영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일찍이 김양의 시조 태종 무열왕은 왕위에 오를 때 이찬 알천(閼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칭송을 받지 않았던가. 그 내용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나는 나이가 늙고 이렇다 할 덕행도 없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春秋公)만한 이가 없으니, 그는 실로 제세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제세(濟世)의 영웅(英雄). 태종 무열왕은 과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고, 천하를 구제한 영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반드시 영웅이 될 것이다. 시조 태종 무열왕이 제세의 영웅이었다면, 나는 난세(亂世)의 영웅이 될 것이다.

일찍이 당나라의 선승 조주(趙州)는 제자 하나가 "난세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지 않았던가.

"난세야말로 호시절(好時節)이다."

그렇다.

김양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난세야말로 최고로 좋은 호시절이다. 난세야말로 영웅, 즉 간웅(奸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나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를 제패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김균정과 그의 아들 김우징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균정과 김우징을 귀한 보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귀한 보물, 이를 '기화(奇貨)'라 부른다.

그러므로 김양이 취할 최선의 행동은 이 '귀한 보물에게 일단 투자를 해 놓는 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화가거(奇貨可居)'의 비책인 것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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