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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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볼품없는 사상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단순하고 호전적이다. 문명교류를 부정하고, 서구와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무모하게 단정지었다.

그 결과 착한 뽀빠이가 브루터스를 한방에 때려 눕히는 만화세계가 돼버린 문명 충돌론은 구 시대 이분법의 재탕이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사라진 뒤 나온 '문명의 충돌' 역시 잊혀질 것이 분명하다."(헌팅턴.후쿠야마 비판 발췌)

"서구인들에게 이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잠재적 광신도 집단이다. 그런 주장을 위해 서구는 노벨상 수상작가 나이폴 같은 제3세계 출신의 준비된 증인을 끌어들인다.

나이폴은 10억 인구의 이슬람을 결함으로 가득 찬 역사로 폄하한다. 그토록 어리석은 주장이 있을까? 어딘가 심각한 지적 상해(傷害)을 입었을 그의 강박증은 지적 파탄일 뿐이다. 그의 재능은 끝났다."(노벨상 수상자 나이폴 비판 발췌)

명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에드워드 사이드(66)의 신간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서구의 주류 지성들을 '비겁한 지적 파탄자'로 맹폭하는 대목이 부지기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들을 '정신 이상자''부끄러움을 모르는 얼치기 지식인'으로 몰아붙이는 표현도 접할 수 있다.

사이드가 『Z매거진』 등에 발표한 글들을 국내에서 순발력있게 재편집한 이 책은 9.11테러 전후 미국 지식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 테러전쟁이 종결국면을 향하는 듯 보이는 것과 달리 '테러 그 이후'에 대한 포괄적 성찰로 썩 적절할 듯싶다.

한데 문제가 있다. 책 머리의 헌사(獻辭)'이성의 힘과 공존의 가능성을 믿는 모든 양심에게' 바쳐진 이 순결한 글들이 독설의 가시를 도처에 숨기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 이유를 사이드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에 나오는 아리아로 설명한다.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하네/진실을/그것이 범죄 취급을 받을지라도".

즉 진정한 교육의 역할이란, 그리고 지식인의 임무란 반항과 회의의 정신을 키우는 것이라는 게 그의 못 말리는 신념이다. 테러 이후 미국의 분위기를 "모비 딕을 쫓는 에이허브 선장"이라고 조롱하는 그의 이번 책이 왜 주목거리일까? 그것은 '경계에 선 지식인' 사이드가 갖는 특수성과 문명비평가로서의 위엄 때문이다.

그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아랍계.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존경받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그는 한때 팔레스타인 망명정부 요인으로 중동협상에 관여했다.

그러나 중동 국가 중 그의 책을 금서(禁書)취급하는 곳도 일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류(主流)의 쏠림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그의 위상은 '지구촌의 균형추' '21세기의 양심'이다.

그의 대(對)미국 지적 풍토 비판이 흔한 반미와 혼동돼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소리의 투명도를 살리기 위해" 직설적 어투를 살렸다는 글의 성격 때문인지 술술 읽히는 이 책의 키워드는 '이성적 판단' '문명의 공존'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이슬람이 미국의 적이라는 보복 욕망 이외에 아무런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오웰리언적인 상황에 '노!'라는 목소리부터 던진다.

이스라엘과 시오니즘 비판이 엄청난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고백의 한쪽에서 "미국의 성조기는 불태워질 만하다"는 발언도 하는 배짱도 눈여겨볼 만하다. 반면 테러리즘에도 균형잡힌 발언을 던진다. "9.11테러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은 양비론(兩非論)일까? 그건 아니다. 그는 "아랍의 반미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혐오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이 지역에 대한 간섭과 약탈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강탈을 용인한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결정이 말썽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결국 사이드의 성찰이 가닿는 최종 해결책은 자신이 NYT에 최근 기고한 글의 소신대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2민족 국가 수립'으로 요약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이번 사태는 '나홀로 미국'이 아닌 유엔이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조우석 기자

*** 에드워드 사이드는

*** 에드워드 사이드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뉴욕 사랑이 지독한 전형적인 뉴요커. 1963년 이후 컬럼비아대 영문학 교수로 출발해 현재 문명비판론자로서의 활동은 뉴욕에서 지적(知的)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의 분쟁은 아랍문화에 대한 서구의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아랍국가들에도 이스라엘을 연구하고 히브리어를 가르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문명 공존론자'다운 논리다. 일례로 그는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우정과 연대를 책에서 고백한다.

얼마 전 가자지구에서 열린 바렌보임 초청 콘서트야말로 "내가 연출한 인생 최고의 이벤트"라고 기뻐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학자 사이드의 최고 업적은 78년에 발표한 고전 『오리엔탈리즘』이다.

서구 사회가 창출해낸 '동양적인 것'이란 서구의 오만과 편견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10년째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상황 속에서 '이성의 힘과 공존'을 설득하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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