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의사 소통이 잘됩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큰 통합은행의 최고경영자가 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98년 8월 공개채용으로 주택은행장에 취임한 그는 12층 은행장실 옆으로 죽 붙어 있는 임원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지 알아보니 임원들이 자주 행장과 눈을 맞추며 무엇을 하는지 살피는 게 일이더군요."

*** 사업부제로 바꾼 은행조직

김정태 행장은 '장사꾼이 되자'며 조직을 사업부제로 바꾸고, 임원실을 해당 부서에 배치했다. 12층 임원실은 다른 사무실로 썼다. 팀장들이 바로 옆 임원에게 수시로 보고하고, 임원도 현장에 나가는 등 일이 휙휙 돌아갔다.

지난 5월 부임한 김종창 기업은행장은 은행장실부터 줄였다. 집무실과 응접실을 합쳐 61평인 공간을 40평으로 축소했다. 여유공간으로 확보한 21평은 직원 휴게실로 내놓았다. 9,10 두개 층에 있던 임원실도 본부별 부서장 옆으로 보냈다.

두 은행은 그뒤 주가도 올랐고 잘 나가는 은행으로 통한다. 조직원끼리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능률을 올릴 수 있음은 기업 경영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국가 경영에선 더욱 중요하다.

99년 봄 쌍끌이 파동으로 혼쭐났던 해양수산부 청사는 당시 서울 강남 유흥가 복판에 있었다. 바닥면적이 좁아서 한 국(局)의 서너개 과(課)사무실을 같은 층에 두지 못했다.

한.일 어업협정 일을 보는 같은 국 직원끼리 만나려면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5백명 직원이 7층부터 19층까지 13개 층을 썼다. 지난해 서대문으로 옮겨 형편이 나아졌다지만, 지금도 7층부터 16층까지 10개 층을 오르내리며 일한다.

경제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 정부청사로 가보자. 건물이 길고 바닥면적이 넓다.그러니 과는 물론 인접 국이 한층에 있다. 한 부처가 2~3개 층에 배치돼 있다. 10개 층 내지 13개 층을 쓰는 조직보다 의사소통이나 업무협조가 아무래도 나은 편이다.

해양수산부도 과천 청사에 건물을 지어 정보통신부와 함께 쓸 계획이 있긴 하다. 5백억원을 들여 7층 건물을 짓기로 하고 98년 말 설계까지 마쳤는데, 공공청사를 수도권에 두는 것을 억제한다는 정책에 따라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심의가 보류된 상태다.

그 사이 해양수산부는 한해에 39억~41억원씩 올해까지 2백34억원을 임차.관리비로 지출했다. 잘해야 2003년에 시작해 2005년에나 청사를 지을 수 있다니 2005년까지 나갈 돈을 합치면 3백90억원에 이른다. 청사도 생각 안하고 덜커덩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을 합친 대가치곤 너무 크다. 무슨 경제 관련 회의 때마다 과천 청사까지 오고가야 하는 비용까지 합치면 손실은 더욱 커진다.

연구원의 경우 더욱 웃지 못할 일도 있다.생산기술연구원은 97년 정부기관 지방분산 시책에 따라 서울 구로공단에서 충남 천안 입장으로 이사했다. 포도로 유명하지만 기업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일부 연구원들은 '포도재배기술 연구원'으로 불러달라고 농담할 정도다. 기업과 가까이 있어야 서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을 텐데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직원간 이동거리 짧아야

굳이 조직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느 조직이든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고 모든 구성원이 제 몫을 바로 해야 건강하고 경쟁력이 생긴다.

그러려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직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 못지 않게 조직원간 이동거리가 짧도록 동선과 공간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구조조정과 개혁의 방향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한두 사람의 독주로는 조직이 오래 못간다. 동네 구멍가게든 대기업이든 고객이 느끼는 친밀감과 조직의 경쟁력도 그 구성원의 원활한 의사소통에서 나온다. 지방정부든 중앙부처든, 여당이든 다수가 된 야당이든 청와대든 다 마찬가지다. 이제 올해도 달포밖에 남지 않았다. 가정이든 회사든, 정부든 조직을 추스르며 21세기 벽두에 세운 목표를 재점검할 때다.

양재찬 경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