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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노동운동 함께 사는 노동운동] 상.<메인> 대기업 강성 노조 연례행사처럼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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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노총이 26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말이 총파업이지 이번에도 일부 강성노조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연례행사가 된 노동계 총파업으로 인해 대외신인도가 추락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외부 환경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우리 노동운동은 왜 강성으로 치닫는지, 상생의 길은 없는지를 2회에 걸쳐 진단한다.

◆ 강경투쟁의 후유증="임단협이 본격화하기 전에 연맹에서 교육을 하면서 'LG칼텍스정유의 총파업은 절대 불법이 아니다'고 했다. 웃기는 소리다. 악법도 개정되기 전에는 법이다. 무슨 배짱으로 책임지지 못할 소리를 지껄이고 다닌단 말인가."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6일까지 18일간에 걸친 LG칼텍스정유의 불법 파업이 끝난 뒤 한 조합원이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이 회사 노조는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봉이 6920만원(회사 측 자료)의 고임금임에도 불구하고 10.5%의 임금 인상과 주5일제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사업장을 벗어나 조선대 등에서 농성을 벌였다. 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 결정을 내리면 파업이 제한되는 필수 공익사업장이면서도 불법파업을 한 것이다. 결국 "고임금 노조의 무리한 요구"라는 비난에 부닥쳤고 임금 4.5% 인상 외에는 별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파업에 가담한 노조원 중 600여명은 다음달로 예정된 회사의 징계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다. 결국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 파업을 측면지원한 상급단체인 화섬연맹에 대한 조합원의 비난이 들끓은 것은 이 때문이다. 회사도 파업으로 인해 올 3분기 영업이익(1055억원)과 순익(802억원)이 전 분기의 절반으로 격감하는 타격을 받았다. 결국 LG칼텍스정유 노조는 지난달 29일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민주노총은 이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에 나섰다.

지난 9월 15일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현대중공업 노조의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이참에 강경투쟁보다는 실리를 챙기자는 주장이 대세다. 노조는 제명조치 이후 산업안전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선명성'을 내세우며 강경일변도의 투쟁을 이끌어온 민주노총이 주력 노조의 잇단 이탈로 지도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 전투적 조합주의 여전=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올 1월 당선 전에 "소수의 전투력 있는 노조만 참여하는 총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총파업이 아니면 남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6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의 지지도는 35%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제 파업에 들어갈 사업장은 현대.기아차 등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위원장의 예고와 달리 이번에도 전투적 사업장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노동운동'에 그친 셈이다.

현대차의 경우 파업에 들어가면 하루에 981억원의 생산 손실이 생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규직이 파업하면 사내 하청업체는 물론 외부의 협력업체까지 라인을 멈춰야 하므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피해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파업으로 인한 근로 손실일수가 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100일이 넘는다. 독일과 일본은 10일 미만이며 영국과 미국도 50일을 넘지 않는다. 그만큼 노조의 파업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총파업을 미루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파업을 강행해야 한다"는 강경론에 묻혀버렸다.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있지만 투쟁 만능주의가 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 노동계의 양극화 심화="같은 노동자이지만 일부 고임금 노동자의 파업을 보면 정말 열을 받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 "우리 회사는 노조가 없어 근로조건이 열악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 있다. 전체 노동자의 88%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양대 노총의 조합원은 대부분 대기업 노동자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160만명 중 500인 이상 대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은 전체의 72.5%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고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 노동자의 처지는 더 열악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는 500인 이상 대기업을 100으로 했을 때 5~9인 영세사업장의 경우 99년 59에서 2003년 50.7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노동부 권영순 노사정책과장은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소수의 조직된 노동자가 과연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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