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50만 달러짜리 보석 삼킨 절도범, 탈옥은 했는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
시작, 320쪽, 1만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란 책의 광고문구처럼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여기 천재적인, 그러나 운은 지지리도 없는 도둑이 있다. 존 아키볼드 도트문더. 37세. 절도죄로 수감됐다 가석방 돼 막 풀려난 그에게 50만 달러짜리 에메랄드를 훔쳐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의뢰인은 UN주재 탈라보 대사인 아이코 대령. 아프리카의 부족인 탈라보는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 부족이 신성시하던 에메랄드를 반대파가 챙겼던 것이다. 마침 뉴욕에서 전시 중인 보석을 훔치는 대가로 1인당 성공보수 3만 달러, 생활비 주당 150달러를 주기로 합의한다. (참고로, 이 소설은 1970년에 출간됐으니 당시로선 적은 돈이 아니다.)

2008년 타계한 대중문학의 거장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대표작 『뉴욕을 털어라』는 1972년로버트 레드포드, 조지 시걸 주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 Abby Adams]

도트문더는 운전사, 자물쇠 전문가, 차량 절도 전문가 등 5명으로 한 팀을 구성한다. 면밀한 조사 끝에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만 팀원들의 실수가 이어진다. 에메랄드를 손에 쥐고 있던 그린우드는 잘못된 길로 도망가다 체포되기 직전, 보석을 꿀꺽 삼켜버린다. 도망친 나머지 네 명은 그린우드를 교도소에서 탈옥시키는 일에 뛰어들어 아무튼 성공하는데, 막상 에메랄드는 경찰서 구치소에 숨겨놨다는 것 아닌가. 그냥 계속 삼키지 그랬냐는 책망에 그린우드는 메스껍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한 번 꺼내고 나니 다시 삼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대중들은 이런 어설픈 도둑에겐 익숙치 않다.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걸쳐놓고 완벽히 탈출하고, 김연아 뺨치는 유연성으로 레이저 감지 장치를 피해가는 게 세기의 도둑들 아닌가. 누구나 홀릴 만큼 매력적인 외모 하며…. 아무튼 그건 영화일 뿐이고, 이 소설의 환상적인 드림팀에겐 매번 머피의 법칙이 강림하시어 경찰서에 이어 정신병원, 은행까지 털어야 할 처지가 된다. 매끈하게 잘 빠진 캐릭터가 아니라, 곧잘 실수를 저지르는 어딘가 어설픈 인물들이라 오히려 인간적이고 정이 간다. 인생이란 게 보통 실수에 허점투성이 아닌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1933~2008)는 미스터리 작가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은 대중문학의 거장이다. ‘리처드 스타크’ ‘앨런 마샬’ ‘새뮤얼 홀트’ 등의 다양한 필명으로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써내면서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뉴욕을 털어라(원제 The Hot Rock)』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이 작품 이후 존 아키볼드 도트문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10여 편 더 써냈다. 프랑스 인기 작가인 기욤 뮈소의 『당신 없는 나는』에는 명화 전문 절도범 아키볼드가 나오는데, 이 작가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싶다. 다소 영화적인 기욤의 소설에선 실수하지 않는 도둑인데다 봉사활동까지 하는 품위있는 인물로 그려지긴 했다.

웨스트레이크는 ‘액션은 난무하되 폭력은 허용치 않을 것’이란 집필 윤리를 고집스레 지켰다고 한다. 폭력 대신 유머가 난무하니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