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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세계적 바이올린 명장 재일동포 진창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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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 불리는 재일동포 진창현(75)씨가 만드는 바이올린은 한대에 150만엔(약 1500만원), 첼로는 300만엔에 팔린다. 일본제로는 최고가이고 세계적으로도 최상품 대접이다. 그는 국제콩쿠르협회에서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보증해 주는 '무검사 제작가' 다섯명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필생의 목표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의 이름을 딴 명품 바이올린)에 필적하는 명기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악기가 내는 소리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내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80%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북 김천 태생인 진씨는 광복 이전인 열네살 때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학업을 잇기 힘든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분뇨 수거 일을 해가며 주경야독했다.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지만 차별대우를 받는 재일동포에겐 변변한 직장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던 어느날, 대학 시절 들었던 한 공학자의 강연이 떠올랐다. 진주만 공습에 동원된 전투기를 만든 일본 최고의 엔지니어가 패전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되자 바이올린 제작으로 돌아섰으나 최첨단 과학으로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악기는 재현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강렬한 도전의식을 느낀 진씨는 당시 일본의 바이올린 장인들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했으나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조선인이란 것 말고는 달리 이유가 없었다.

"독학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산 속에 움막을 짓고 나무를 베어 밤낮으로 조각도와 씨름했습니다. 칠하는 것도 혼자 연구했지요. 배가 고팠으니 헐값이라도 많이 만들어 팔아야 했습니다(그가 1950년대에 처음 만든 바이올린은 기계로 찍어낸 대량생산품도 1만엔에 팔리던 무렵에 3000엔에 팔렸다고 한다). 그러기를 한 10년쯤 하니까 악기에서 나만의 소리가 나오더군요."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76년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 나가 6개 부문 중 5개 부문을 휩쓸면서부터다.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남들은 재일동포란 사실이 큰 약점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운명과 맞서 싸우는 힘의 원천이 됐으니까요.역경이 오히려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씨는 "바이올린 한대의 제작 원가가 얼마쯤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1만엔쯤 됩니까"라고 답하자 "정확하게 7000엔이 든다"며 "수백배 값을 받고 파니 이만큼 부가가치가 큰 산업이 어디 있느냐"며 웃었다.

"일주일 일하면 1년 먹고 살 만한 수입이 됩니다. 돈은 더 안 벌어도 되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작업대에 앉습니다. 16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바이올린이란 소우주, 거기에 아직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가 있거든요."

명장(名匠)이란 말은 진씨와 같은 사람을 일컫는 단어일 것이다. 그의 삶은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이란 제목의 3시간 분량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오는 27일 일본 후지TV의 창사 40주년 특집 작품으로 방영된다. 일본 최고의 연출자로 꼽히는 스기타 시게미치(杉田成道)가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인 진씨 역할은 '초난강'이란 예명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구사나기 쓰요시(草剛)가 맡았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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