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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대 이문화관리' 국제학술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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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글로벌 시대에는 나라 사이의 문화차이가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사소한 차이라고 무시했다가 뜻밖의 낭패를 보는 기업들도 많다.

한국외국어대학 외국학종합연구센터(http://www.hufs.ac.kr)가 지난 15일 서울캠퍼스 애경홀에서 중앙일보 후원으로 연 '국가들의 통합.기업합병.국제경영과 이문화(異文化)관리'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이같은 사례들이 많이 발표됐다.

미국 메릴랜드대 마틴 개논 교수.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소장.국내기업 실무자 등 13명이 이날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국가.지역간 문화차이에 따른 사업상 애로는 주한 외국기업뿐 아니라 해외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 주한 외국기업이 겪는 갈등=계약에 따라 한국기업에게 기술자문을 하고 있는 스위스 A사는 최근 문화적인 오해로 인해 한국회사와 신경전을 폈다.

한국업체가 석달 전 서명한 계약 내용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파견기술자에게 주는 자문료(월급)를 미 달러화로 주기로 되어 있는 데도 한국회사측이 절반을 원화로 주겠다고 했다.

한국회사 관계자는 "스위스 기술자가 한국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원화가 필요할 것 같아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선의에서 아이디어를 냈는데도 스위스 업체는 한국회사에 큰 불신감을 품게 됐다. 한국업체가 너무 쉽게 계약서를 바꾸려고 한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업체 관계자는 "계약 당시 몰랐지만 사정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회사측은 스위스 회사측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적극 해명에 나서 오해는 풀렸다고 한다.

하지만 계약을 중시하지 않는 한국업체에 대한 스위스 업체의 곱지 않은 시선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주한 외국기업들은 또 ▶언어소통이 제대로 안되는 문제▶준법에 대한 시각차 등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잦은 마찰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국제 인수.합병 땐 더 심각=다국적 컨설팅회사인 JPB는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의 플라메이톰이 1999년 12월 원자력발전소 부문을 합병할 때 컨설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독일 두 회사 측은 영어로 회의를 진행했지만 단어마다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해 문제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재난.재앙을 뜻하는 'Catastrophe'를 프랑스인은 사소한 문제라고 여기는 반면 독일인은 심각한 상황으로 해석했다.

JPB는 이처럼 프랑스인과 독일인이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단어만도 1백5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

특히 프랑스인은 주제 없이 자유분방하게 회의를 하는 반면 독일인은 특정한 내용을 선정해 확실한 결론을 내려고 했다.

외국인 행장이 부임한 제일은행도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다보니 참석자들마다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엉뚱한 일이 잦았다.

이에 따라 제일은행은 회의시간이 두배로 늘어나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전문 통역사를 배석시키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컨설팅이 전세계 5백40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조사한 결과 70% 정도가 이질문화를 극복하지 못해 목표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실패한 것은 인수.합병 때 재무상태 등 숫자와 관련한 내용만 따졌기 때문이다. 기업문화 등을 고려해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 해외진출 한국기업도 고전=국내의 유명 핸드백 제조업체인 C사는 호주에서 관광상품을 팔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핸드백 브랜드 이름 끝에 'SEOUL'이라는 글자가 붙은 게 화근이었다.

이 핸드백을 주로 구입하는 일본 등 현지관광객들이 '서울'이란 이름을 보고 싸구려 제품이라며 외면했기 때문이다.

현지 상인들은 "일본인 탓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브랜드에서 서울이라는 글자를 빼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이 베트남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으나 문화적 갈등은 많이 잠재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기업이 이익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것을 적대행위로 본다.

사업 초기에는 잘 나가다가도 나중에 현지 파트너나 공무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해 경제를 도와주는 것은 환영하지만 이익을 빼가면 안된다는 베트남식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현지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내 인터넷업체들이 일본 업체들과 협상할 때 고전하는 이유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초고속 인터넷망 분야에서 뒤져 있는 일본 업체를 상대로 첨단 솔루션을 팔겠다고 나서고 있으나 일본인들의 완벽한 품질 요구에 두 손을 드는 사례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은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끈질기게 접근하지 못한다. 적대감이 들어 있는 '일본놈'이라는 표현으로 정서적 측면을 앞세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 온라인 통한 이문화 관리=삼성은 이문화 극복을 위해 온라인망을 이용한다. 이를 통해 삼성인의 국제화.주재원의 현지화.현지인의 삼성화를 실천한다.

국내와 해외 직원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지식.정보.유행을 이해시키고 외국기업문화를 습득시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역전문가.주재원.해외거주 가족까지 총동원해 이문화 체험수기 등을 보급하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문화차이를 극복하고 잘 적응하고 있는 인물로는 일본 후지제록스 코리아의 다카하시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카하시 사장은 퇴근 후 한국 직원들과 어울려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시면서 문제를 풀어나간 점이 높이 평가됐다. 그는 적자이던 회사를 부임 후 흑자로 돌려 놓았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웨인 첨리 사장은 수백만원에 이르는 단란주점 접대비를 회사 경비로 처리할 수 없어 자기돈으로 지불하는 등 한국 기업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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