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80~90년대로 시선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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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 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감각적으로 파헤쳐 온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내년에는 시대적 배경을 1980~90년대로 옮겨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동시대의 역사를 조명한다.

내년 1~4월 방영할 15편에는 삼청교육대.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보도지침.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 등이 들어 있다.

또 지금까지 민감한 사안이라서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문제에도 초점을 맞춘다. 폐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신천 학살사건, 김일성 항일투쟁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북항일연군과 김일성', 친일파 청산이 실패한 배경을 조명하는 '노덕술과 친일 경찰' 등을 준비하고 있다. 목록들을 보면 현대사 한 켠에 남아 있는 '성역'을 깨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읽힌다.

'이제는…'는 현대사의 미스터리를 재조명, 심야 시간대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드물게 1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엠네스티 언론상.민주언론상 등 각종 상을 받았다.

방송 초반 사건 관련자들이 출연을 기피해 '반쪽 프로'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리를 잡아가면서 전문가들에게서도 호평을 받았다. 다만 분단과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좌.우익간 대립에서 비롯된 사건을 많이 다루다가 색깔론 시비에 휘말렸던 아픔이 있다.

99년 9월 '제주 4.3 항쟁'으로 시작한 '이제는…'는 그해 13편, 지난해에 15편, 올해 15편을 방영해 모두 43편을 내보냈다. 첫 해에 여순 사건.동베를린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다뤘다면, 지난해에는 한국전쟁 재조명.미국에 대한 재인식.박정희 정권에 대한 성찰 등 주제별 접근을 시도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민족일보와 조용수''전태일과 그 후''정인숙 피살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이 그 예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억눌러온 반공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털어내는 데 주력했다.'전향공작''도시산업 선교회' 등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레드 콤플렉스'를 건드렸던 건 그런 배경에서다.

내년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정길화 CP는 "현재 진행형인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대안 제시 등이 우리 팀에 부과된 과제"라면서 "다양한 자료와 증언 발굴을 통해 현대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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