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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신참사원들, 해외 근무서 터득한 노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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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왼쪽부터 서보국.김문선.김해인.김도형씨. 해외근무는 장기적인 경력 관리의 수단일 뿐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신인섭 기자

입사 2~3년차에 해외근무를 한다? 국내 기업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에선 모든 기회는 '뛰는 자의 것'이다. 최근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글로벌 기업의 새내기 직원 4명을 만나 보았다. 해외 근무에 대해 "보람 있었지만 보랏빛 신세계는 아니었다"는 공통된 소감을 털어놓았다. 글로벌 기업에서 영어는 기본이다. 공교롭게 모두 국내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 4명의 토종 사원들은 "영어 공부에 왕도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털어놓는 외국계 기업의 입사 비결, 해외 근무의 보람과 애환을 들어봤다.

◆ 토종으로 자유롭게 영어 하는 비결

▶김도형=다들 해외 유학파인 줄 알았는데 모두 유학 경험이 없는 토종이라니 놀랍다. 나의 영어공부 방법은 영어 소설책을 읽는 것이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사전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빠르게 문맥을 파악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호주에 1년 동안 접시 닦고, 농장일을 하는 워킹 홀리데이도 갔다 왔다.

▶김문선=팝송 받아 적기, 라디오 영어프로그램 받아 적기, 영어회화 테이프 받아 적기 등을 꾸준히 했다. 외국인 친구도 일부러 사귀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지하철에서 낯선 외국인을 보면 일부러 다가가 말을 걸곤 했다.

▶김해인=나도 본사 근무 전까진 해외라곤 유럽 배낭여행 한 달이 전부였다. 팝송.영화를 좋아해 외국 노래와 영화를 자주 반복해 듣거나 보는 것으로 영어 공부를 대신 했다.

▶서보국=사실 아직도 영어에는 자신이 없다. 학교에서 보내준 교환학생 프로그램 덕을 많이 봤고, 군대 시절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해 생활 영어는 어느 정도 익숙해 있었다. 요즘도 영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같은 영자신문을 읽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 젊은 시절의 해외근무

▶김도형=최근 두 달 정도 외국에 나가 마케팅 매니저 없이 혼자 헤어살롱 브랜드를 책임졌다. 신입사원이지만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본사 회장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도 많이 해봤다. 그때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 프랑스 파리 본사에 출장갔을 때 영국에 빈자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면접시험까지 보기도 했다.

▶김해인=해외 근무는 시험대다. 자기의 능력과 스스로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자기 계발이나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어야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서보국=GE는 다양한 채용 채널을 갖고 있는데, 내가 채용된 건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말 그대로 GE를 이끌고 갈 리더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그중 금융 관리 부문에 뽑혔다.

▶김문선=전 직원 120명 중 영업관리직이 11명이다. 이 중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싱가포르에 파견된다. 싱가포르는 아태지역의 물류기지다. 누군가 싱가포르에 있어야 업무협의도 잘 되고 돌아와서도 일이 잘 굴러간다. 입사 7개월 만에 해외에 나가게 됐다.

◆ 해외근무서 이런 걸 배웠다

▶서보국=중국에서 근무할 때 싱가포르.인도.헝가리.일본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섞여 일했다. 인도 사람들이 소리칠 땐 화내는 게 아니구나, 일본 사람들에겐 업무지시를 확실히 해야 하는구나…이런 걸 배웠다. 글로벌한 센스를 익히는 것이다.

▶김도형=어디서 비즈니스를 하든지 기본은 똑같다는 걸 느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었다.

▶김문선=한국과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타인의 시선도 덜 의식하게 됐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얻고 돌아왔다.

▶김해인=외국이든 국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적극성이 모든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능력도 부쩍 는 것 같다.

▶서보국=우리 기준으로 보면 별것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자랑하는 걸 많이 봤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반대에 부딪히면 적절한 논리로 방어를 잘 했다. 한국 사람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김도형=동감이다. 평소 컴퓨터를 잘 고친다고 자랑하던 유럽인이 고장 난 내 컴퓨터를 맡겼더니 손도 못 대더라.

◆ 환상은 금물, 고통이 따른다

▶김문선=솔직히 해외 근무가 만만하지는 않았다. 처음 갔을 때 "너 전에 온 사람들이 다 울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기가 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울지 않고 버텼다.

▶김도형=근무지가 유럽이다 보니 아시아 사람의 비중이 낮았다. 왠지 모를 소외감이 힘들었다.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뛰어난 인재들도 많은데, 동양에서 온 내가 왜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각인시키려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헤어 트렌드를 연구하기 위해 현지 패션 잡지를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형광펜으로 표시하면서 밤새워 읽곤 했다.

▶김해인=내가 갔을 때 최초의 아시아 출신 직원이었다. 그래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음식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유럽음식 매일 먹다 보면 한국 생각이 간절했다.

▶서보국=일도 배워야 했고, 언어도 배워야 했다. 회사 밖에 한발짝만 나가면 중국어를 쓸 수밖에 없어 생존 차원에서 중국어를 빨리 익혀야 했다. 입사 2년 후 정식 배치를 할 때 해외근무 성적이 중요하다고 해 신경이 쓰였다.

◆ 나의 꿈, 나의 커리어

▶서보국=6개월 중국 근무는 해외근무의 끝이 아니다. 다시 중국에 자원해 가려 한다. GE는 '성장'을 유달리 강조한다. 세계에서 크게 성장하는 유일한 시장이 중국이다. 다국적 사람들을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거친 뒤 긴 호흡으로 미국 본사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김해인=스위스에서 배워온 인사관리 노하우를 한국시장에 적용해 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마케팅이나 기획 쪽도 해보고 싶다.

▶김도형=로레알은 브랜드 간 이동이 자유롭다. 수퍼마켓이나 할인점에서 파는 대중 브랜드에 한번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 외국 브랜드는 이쪽이 좀 약한 편이다.

▶김문선=여자들이 거의 없는 반도체 세일즈나 컨설턴트에 관심이 있다. 일단 IT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쌓은 만큼 이를 잘 활용하는 쪽으로 경력관리를 하고 싶다.

진행.정리=최지영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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