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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퇴계] 4·끝 이 시대에 어떤 역할 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인간의 예지나 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보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인심의 황폐와 자연의 오염, 윤리의 타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자못 높다.

이러한 때, 지금 우리 시대의 도덕사회를 지향함에 있어 퇴계사상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퇴계의 마음의 공부,심성수양의 학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퇴계심학(退溪心學)은 중국 왕양명(王陽明)의 양명심학(陽明心學)과 구별하기 위해 이것을 경심학(敬心學).지경심학(持敬心學)이라고도 한다. '지경(持敬)'이란 마음을 삼가고 엄숙하게 하여 한가지 일에 관심을 집중시켜 다른 데로 흐트러져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퇴계심학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이 경(敬)에 대해 퇴계학 국제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한 외국 학자는 "'경'에 의해 마음을 제어한다는 것은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유기적인 작용의 전부를 제어하는 것, 극언하면 마음이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인간의 예지와 윤리가 병진(竝進)하고, 황폐화한 인심을 제어하고 바로잡아 인간정신의 순수성을 회복하여 도덕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퇴계심학의 핵심에 있는 경의 철학을 재조명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이같은 퇴계심학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퇴계 자신의 말을 인용하여 보자.『퇴계전서』(권7)에는 "심학이 비록 다단(多端)하지만 이것을 종합해서 요약하여 말하면 인욕(人欲)을 막는 일과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일의 두 가지 일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라고 한 퇴계의 말이 보인다.

퇴계 자신이 심학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학이 다단하다는 것은 심성수양의 학문의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뜻이다.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전한다'는 성리학적 욕망억제 사상은 후세에 비판대에 오르기도 했으나,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보와 이윤추구 일변도의 시장경제 원리가 팽배한 현 시점에는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욕망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만족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문제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익추구의 노골화에 아무런 주저도 없게 되었다. 온전히 '인욕전성시대(人欲全盛時代)'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말미암은 자연환경의 파괴는 극에 다다르고 있고 사람의 마음도 그 순수성이 오염되어 황폐화하였다.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익추구의 경쟁심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퇴계심학의 '키워드'인 '알인욕존천리'를 재음미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은 전부가 천박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부류의 층이 점점 두터워져 가고 있다.

이와 같은,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린 천박한 자기상실자의 자기회복과 고결화(高潔化)를 위해서도 퇴계사상은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병주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퇴계학회장 ·중국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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