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하림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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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최하림(1940~ ) '어디로?'

저마다 제 몫을 챙기겠다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그는 도시를 버리고 산속 깊이 은둔해 있다. 20년 전에 초판본이 나온 김수영론을 보강해 완결한 것도 그의 일과였다.'검은 색'은 어떤 다양한 색보다 한수 위인 아름다운 색이다.

의상도 그렇지만 풍경 뒤를 바라보는,흔들리지 않고 서있는 나무는 시인 자신이다. 서있는 나무는 나무인 나를 반성하고 때묻은 속진 '반성적 거리'를 반성한다. '어디로?' 산길에 멈춘 파란만장했던 그의 시선은….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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