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치료의 뉴 트렌드 ① 글리벡 효과 없다면 2세대 항암제로 전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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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구관(舊官)이 명관(名官)?’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혁신적인 신약과 치료법이 잇따라 개발되는 의료 분야에선 예외일 수 있다.

물론 장기간 사용돼 온 치료제는 효과와 안전성을 인정받아 환자와 의료진의 신뢰를 얻는다. 반면 오래 사용한 만큼 내성이 생길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선 효과적인 약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특정 약물을 선택해 계속 복용해야 하는 항암제 경우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만성골수백혈병 치료제다. 만성골수백혈병은 급성 백혈병과는 달리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혈액암이다. 현재 혁신적인 치료제가 속속 개발돼 약 90%의 높은 장기 생존율을 보인다.

1990년대까지 골수 이식만이 완치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만성골수백혈병 표적 항암제인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이 등장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글리벡의 출현으로 7년간 생존율이 90%를 기록하는 등 높은 치료 효과를 보여 백혈병 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백혈병 치료의 ‘명관’으로 알려진 글리벡 역시 내성이라는 벽에 부닥쳤다. 글리벡 내성은 처음부터 나타나거나, 치료하면서 발생하는 환자로 나뉜다. 만성기는 대개 5~10%, 가속기는 20~30%, 급성기에서는 80~90% 환자에게서 발현된다.

만성골수백혈병의 치료 목표가 급성기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질병의 진행이 빨라지는 급성기에 내성이 나타난 환자는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글리벡에 내성이 생기거나 글리벡에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를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포스트 글리벡이라 불리는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다.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은 글리벡에 내성 또는 불내약성을 보이는 만성골수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하는 2차 치료제다. 스프라이셀의 가장 큰 장점은 만성골수백혈병의 내성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암 단백질을 광범위하게 억제하는 치료 효과를 들 수 있다. 실제 글리벡 내성 환자에게 글리벡 고용량을 투여하기보다 스프라이셀을 투여할 때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백혈병 치료의 국제적인 표준 지침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럽 백혈병연구위원회(ELN: European Leukemia Net)의 2009년 최신 개정안에서도 글리벡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스프라이셀 같은 2차 치료제로 전환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불치병으로 인식돼왔던 백혈병 치료의 역사를 새로 쓴 글리벡은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안겨준 약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글리벡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라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무작정 그 치료법을 고수하기보다 스프라이셀 같은 혁신적인 2세대 항암제, 즉 ‘능력 있는 신관’의 부임을 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글=정철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삼성의료원 혈액내과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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