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 정제기, 진공 지퍼백 … 일상서 건져올린 아이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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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작은 펌프를 눌러 공기를 빼내 야채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지퍼백.

가정에서 튀김요리를 두어 번 하고 남은 기름을 버리려면 아깝다. 그래도 탄 기름은 몸에 좋지 않다니 다시 쓰기 뭐하다. 통닭집에 가면 여러 번 쓴 기름으로 튀긴 것을 먹게 되지 않을까 꺼림칙하게 생각하기 일쑤다. 여성발명가 이가연(우신엔티아이 대표)씨는 식용유 정제기를 개발해 이를 파는 회사를 차렸다. 곰국을 끓일 때 삼베를 솥에 깔아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서 착안했다. 그런가 하면 최은숙(모닝피아 대표)씨는 차량 주차를 돕는 블록을 개발했다. 자동차 바퀴가 블록에 올라가면 압축된 공기가 나팔 불 듯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소리 나는 블록인 셈이다. 주차가 서툰 여성과 노인을 염두에 뒀다. 이는 6~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여성발명품 전시회’에 등장한 출품작들이다. 특허청이 한국여성발명협회·세계지식재산권기구와 함께 개최한 이번 행사에는 300여 점의 발명품이 전시됐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 중에 시각을 달리하면 찾을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들이다. 특히 집안일을 하다가 탄생한 발명 아이디어가 끈질긴 노력 끝에 상품화된 것들이 많다. 최씨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이라도 좀 더 편하고 쓸모 있게 개선할 수 없을까 신경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발명가가 됐다”고 말했다.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특허 출원부터 하는 습관이 들 정도다.

한미영 한국여성발명협회장은 “여성이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사회와 국가가 변한다. 여성 발명의 활성화는 여성에게 경제력을 키우고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가연씨의 식용유 정제기는 한 번 쓴 식용유를 여러 번 쓸 수 있게 함으로써 통닭집의 식용유 구입비를 최고 80%까지 절약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국제발명전에서도 금상을 받은 제품이다. 이숙희(한국UCD 대표)씨의 ‘안전발효기’는 과실주를 담글 때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가 이상 발효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또 발효 때 발생하는 병 안의 가스를 쉽사리 배출케 했다. 보통 알코올 발효 때 당분 1㎏당 300L의 탄산가스가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용기가 파손되기도 한다. 이렇게 담근 과실주를 마시면 숙취가 적다는 설명.

나경자(썬앤아이 대표)씨는 족욕기를 출품했다. 무명실에 탄소를 흡착시킨 뒤 베를 짜, 두 발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전기를 공급하면 탄소를 타고 흐르는 전기에서 열이 발생해 족욕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연숙(에어락 대표)씨는 비닐봉지 안의 공기를 빼내 야채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에어락 진공 지퍼백’을 내놨다. 이외에도 1만 분의 1초 속도로 가스 밸브를 여닫을 수 있는 박나연(코스모테크놀로지 대표)씨의 ‘가스 안전장치’, 박선옥씨의 자동 싱크대 청소기 등도 눈에 띄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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