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엇갈리는 ‘노점 특화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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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5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 일방통행 차도의 양쪽 인도에 연두색 노점 21개가 늘어서 있다. 20년 넘게 좁은 인도를 차지한 노점이 정비된 지 3년째. 차도를 줄여 넓힌 인도는 폭이 3~4m로 보행자들이 걷는 데 불편함이 없다. 노점 디자인과 규격도 통일했다. 노점상들은 실명 등록을 하고 1년에 80만원 정도의 도로 점용료를 내는 대신 단속의 불안에서 해방됐다. 서울시가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노점 특화거리 사업’의 결과다.

이곳에서 20년째 벨트와 액세서리 노점을 하고 있는 방정학(55)씨는 “과거에는 노점들이 경쟁하듯 넓게 물건을 늘어놓았었는데, 디자인을 통일한 후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방씨는 “단속 걱정도 없는 데다 거리가 깔끔해지면서 천호동의 대표적인 쇼핑거리가 되면서 장사도 잘 된다”고 덧붙였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 옷을 사러 나온 이채리(32·주부)씨는 “예전에는 노점 때문에 지나다니기가 불편했는데 특화거리가 된 이후에는 쇼핑이 쾌적해졌다”고 말했다.

‘노점 특화거리’로 지정된 종로구 낙원동 수표다릿길. ‘다문화 거리’를 표방하지만 떡볶이 등을 파는 노점이 많아 주변 상점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변선구 기자]

같은 날 종로 낙원동 수표다릿길. 종로2~3가 대로변에 있던 노점 80여 개가 옮겨와 장사를 하고 있다. 대로변은 걷기 편한 거리로 바뀌었지만 ‘다문화 거리’로 이름 붙인 이곳은 상인과 노점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갈등이 심각하다. 바로 앞의 상점과 노점에서 욕설이 오가는 것이 예사다. 박상석 낙원동상인번영회장은 “서울시는 노점에 베트남·필리핀 음식 등을 팔게 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떡볶이·순대 등 우리가 팔고 있는 음식을 판다”며 “노점 때문에 상권이 다 죽었다”며 언성을 높였다.

같은 업종의 노점을 옮겨오도록 해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노점상 서모(46·여)씨는 “우리도 대로변에서 장사하는 것이 좋다”며 “시가 하라는 대로 할 뿐 난감하다”고 말한다.

서울시가 노점을 합법화하고 디자인을 통일하는 ‘노점 특화거리 사업’을 벌인 지 3년째. 노점 1만여 개 중 20%인 노점 2066곳이 특화거리로 편입됐다. 실명 등록을 하고 구청이 정한 규격의 노점을 쓰면 1년 동안 ‘합법’으로 인정 받고, 위생 기준 등 규칙을 지켜야만 1년 단위로 다음번에 계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

5일 기자가 찾은 동대문 노점 특화거리의 경우 20여 개 노점 중 대부분이 간이 걸개와 보조의자, 탁자를 내놓아 2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지하상가 입구를 표시하는 표지판에도 걸개를 걸어놓고 가방·옷을 파는 곳도 있다. 노점상 정모(50)씨는 “통일된 디자인의 노점은 예전 것에 비해 3분의 2로 축소된 것”이라며 “안 되는 걸 알지만 장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구청이 점검을 하지만 그때뿐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로 예정한 사업 기간을 ‘무기한’으로 바꿨다. 서울시 가로환경개선담당관실 이두영 담당은 “특화거리의 노점에서 위생 기준 등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 해 운영권을 주지 않고 있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 불법 영업을 계속한다”며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 용산 효창원길 등 13개구 22개소에 특화거리를 만든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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