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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아삭바삭 생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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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옛 과자는 생김만큼이나 이름도 소박하다. 하얀 생강가루를 묻혔으면 ‘생강 과자’, 네모꼴로 생겼으면 ‘네모 과자’다.

‘궁극의 요리를 내놓아라’. 귀여운 생쥐 요리사 ‘레미’가 나오는 영화 ‘라따뚜이’를 기억하세요? 악명 높은 요리 평론가 안톤에게 음식을 검증받아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날카로운 평론의 메스를 휘둘러 음식점 여럿 문 닫게 한 ‘지옥의 평론가’와의 일전이었죠. 레미가 내놓은 음식은 ‘라따뚜이’였습니다. 프랑스 시골에서 먹는 야채스튜. 우리 식으로 하면 순두부찌개 정도랄까요. 하지만 한 숟갈 입에 넣은 라따뚜이는 안톤을 어릴 적 엄마의 식탁 앞으로 데려갑니다. 엄마의 추억, 게임 끝. 마음이 굴복하면 미각도 따라오니까요. 그래서 음식은 행복을 혀 끝에 새기는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기억을 불러내는 주문 같은 간식거리라면 요즘 거리마다 넘치는 옛날식 딱딱한 전병과자인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그 과자만 보면 “옛날 우리 동네엔 저 과자를 만들어 파는 집이 있었다”고 추억하시네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이런 생과자를 아직도 옛날처럼 만들어 파는 집이 있는지. 서울에서 두 곳을 찾았습니다.

글=권희진·남형석 기자 · namgiz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삼각지 ‘김용안 과자점’

옛맛 그대로, 그때 그 시절 떠오르네

“부모님 친구분들이 오셨을 때 내놓으면 효녀 소리 들어요.” 김상희(26·서울 압구정동)씨는 집에서 승용차로 30분쯤 걸리는 삼각지 과자점까지 한 달에 두세 번씩 들러 과자를 사간다. 5년 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곳에서 과자를 사갔더니 부모님이 더 좋아하셨단다. 옛날 맛 그대로라는 감탄과 함께. “이거 한번 사다 주니 이것만 찾네요.” 김미정(38)씨가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주려고 찾는 곳도 여기다. “옛날 맛 그대로” 손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표현한다.

주인 김용안(68·사진)씨는 42년째 과자를 굽는다. 1968년 연희동에서 시작해서 상도동·흑석동·공릉 거쳐 삼각지 지금의 가게로 온 지 26년째다. 처음에는 연탄불을 피워놓고 직접 손으로 과자를 굽다가, 88년에야 과자 굽는 기계를 들였다. 70년대엔 한 동네에 몇 개씩도 있던 과자점이 80년대 이후 급속히 사라졌다. “배운 게 이것뿐이라 과자만 구웠죠.” 90년대 초에는 수입이 줄어 월세 30만원을 석 달 밀린 적도 있다. 낮에는 가게를 지키고 밤에는 일당 1만5000원짜리 ‘출장 과자구이’를 했던 때다. ‘과자점’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무렵,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젠 수원·평택·의정부에서도 찾아오는 ‘삼각지 명소’가 됐다. 과자점이 거의 다 사라지면서 희소가치가 높아진 때문이라고 했다.

긴 세월을 거쳤지만, 기본 과자 종류는 생강과자, 부채꼴 과자 등 42년째 그대로다. 8평 남짓한 작은 가게의 내부는 몇 번 바꿨지만, 과자 맛은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 “우리 손님들은 옛날 맛과 향수를 느끼기 위해 오는 것이니 바꿀 수가 없죠.”

김씨는 이 일을 가업으로 전수하고 싶어 한다. 김씨의 두 아들도 일을 배우며 함께 과자를 굽고 있다. 멀리서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는 한 과자점은 계속될 거라는 것이다. 대를 잇는 건 주인뿐이 아니다. 부모님에게 사다 드리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어린애들 데리고 오는 젊은 부모들도 있다. “내가 아들에게 옛날 맛 내는 법을 전수하듯 손님들도 자식들에게 이 과자 맛을 전해주겠죠.” 02-796-6345.

홍은동 ‘추억을 굽는 가게’

생강·땅콩·김 … 재료 아낌 없이 쓴다

파래를 섞어 만든 ‘세모 과자’는 가장자리 모양이 활짝 핀 부채살을 닮았다고 해서 ‘부채 과자’로도 불린다.

서울 서북부 홍은사거리 고가도로 옆 2평 남짓 작은 가게가 3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억을 굽는 가게’. 주인 김용일(65)씨가 74년부터 생과자를 구워온 곳이다. 한 명이 서면 가득 찰 정도의 좁은 통로 옆으로 10가지가 넘는 과자가 구수한 향을 풍긴다. 한쪽에서는 과자를 구워 내느라 쉴 새 없이 찰캉찰캉 기계소리를 내고 있다. 김씨는 바삭하게 익은 과자를 열 맞추어 가지런하게 담고 있다.

“멀리 강남에서도 이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온답니다.” 김씨는 손님들이 먼 곳에서도 찾아와 한번에 몇만원어치씩 사간다며 자랑을 한다. 옛맛을 잊지 못하는 50, 60대 손님들이 주 고객층이다. 김씨는 “생강·땅콩·김을 아끼지 않아 향이 좋고 맛도 뛰어나요. 다른 과자들은 이 맛 못 내지”라며 은근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양은을 사용하지 않고 두꺼운 철판으로 과자를 구워내는 것도 비법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과자에 열이 전달돼 더 바짝 구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김씨의 과자는 두툼하면서도 가볍다. 재료가 풍부해 두툼하고 수분이 적어 가벼운 것. 김씨는 “요즘 나오는 건 딱딱한데, 원래 이 과자의 맛은 바삭하게 씹히는 게 일품”이라고 말했다.

“손님은 70~80년대만큼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꾸준히 찾는 손님들이 있어요.”

젊었을 적 전북 고창에서 상경해 땅콩을 볶아 과자점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는 김씨. 그렇게 어깨 너머로 배운 과자 굽는 법을 토대로 74년 현재의 가게를 냈다. 주 종목은 생과자지만 땅콩도 판다. 7년 전에는 딸이 신촌에 분점을 냈고,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신촌점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요. 내가 뭐랬어? 한번 맛보면 안 빠져들 수가 없다니까….”



TIP 생과자의 열량은?

달달한 맛의 생과자는 과연 몇 칼로리나 될까. ‘추억을 굽는 가게’ 신촌점의 김유강(31세) 사장에 따르면 100g(대략 10개 분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동그라미 생과자 325kcal, 부채과자 307kcal, 생강과자 330kcal이라고 한다. 쌀밥 1공기(210g, 313kcal) 분량이다. 김씨는 “철판에 굽는 제조 방법이라 튀기는 과자보다 단맛에 비해 칼로리는 높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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