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유창혁-고노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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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끈기있는 黑의 '역전 드라마'

제6보 (128~154)=흑▲가 날카롭다면 128부터 132의 수순은 유유하다. 135는 큰 곳. 고노린6단은 백의 등 뒤까지 따라붙으며 가쁜 숨을 훅훅 토해내고 있다. 이 아슬아슬한 대목에서 劉9단이 의문의 수를 두었다.

"백이 139의 곳을 먼저 끊어 잡지 않은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중앙이 크다지만 139의 절단은 선수나 마찬가지 아닌가." (홍태선8단)

낙관파의 고질병이 등장하고 있다. 형세가 좋을 때 재삼 돌다리를 두드려보지 않고 대충 이 정도면 하고 쓱쓱 지나가버리는 그 병 말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약이 될 때도 있으니 세상사는 그래서 어렵다).

백이 139로 한점 잡으면 그다음 '가'의 절단이 선수여서 백은 손빼기 어렵다.

흑이 뭔가 지키면 그때 138에 두어 확실한 백승. 실전은 139가 커서 흑은 135에 이어 연이은 득점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劉9단이 믿었던 중앙은 141에 이어 145로 두는 의외의 맥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하의 유창혁도 이 놀라운 수순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다.

145에 '참고도'백1로 막으면 흑2,4로 움직이는 수가 있다. A,B가 맞보기여서 꼼짝없이 걸려든 모습. 그렇다고 백3으로 다른 곳에 두는 것은 흑C로 ▲ 한점이 생환한다.

거금을 투자한 중앙이 속빈 강정으로 변하자 劉9단은 신음을 터뜨리며 148 쪽으로 달려가버린다. 끈덕지게 따라붙은 고노린6단이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이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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