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심 수습에 주력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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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9개월 만에 오늘 다시 만난다. 그 계기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이고, 그에 따른 초당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시기나 명분에서 볼 때 적절한 회동이다. 전쟁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댈 곳을 찾는 시장의 불안감을 다독이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용호 사건에서 드러난 국정의 장기 표류, 언론사 세무조사.남북관계를 둘러싼 국론 분열과 이념갈등, 여야의 지루한 벼랑 끝 대치, 경제난으로 인해 국민이 영수회담에 거는 기대와 주문은 여러가지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을 줄이는 실천 의지를 담는 자리가 돼야 한다.정부가 짜고 있는 단계적 비상대책은 국회에서 제때에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그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의 양상에 따라 추경.물가.에너지 등의 대책이 바로 실천에 옮겨지도록 여야 가릴것 없이 나서줘야 한다.

회동이 테러 참사를 둘러싼 우리 사회 일각의 그릇된 시각을 고쳐주는 계기도 돼야 한다.6천여명이나 죽은 참사를 미국의 오만함이 낳은 산물이니 하며 반미쪽에 무게를 둔 편협함과 가치혼란이 나타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인류공동의 적"(金대통령), "테러를 뿌리뽑는 반테러 전쟁을 지지한다"(李총재)는 두 사람의 입장은 명쾌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만남이 되기 위해선 그런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민심은 추석 연휴 동안 드러났듯 분노와 좌절 그 자체다. 두 지도자는 이런 소리들을 모아놓고 짜임새있는 민심 수습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영수회동의 의제를 '민생.경제문제로 국한했다'고 하지만, 민생 문제의 핵심은 이용호 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다. 때문에 이 사건과 연루된 권력부패 의혹에 대한 金대통령의 단호한 척결의지와 결단없이는 민생의 안정적 관리는 어렵다.

이와 함께 민심을 쪼개놓았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대북지원,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金대통령의 진전된 입장과 구상이 나와야 한다. 민생.경제문제를 다시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국정쇄신을 위해선 이들 사안을 우회해선 곤란하다.

李총재도 국회 의석수 제1당으로서 정국 관리에 책임이 있다. 야당의 한계가 있지만 이용호 사건에서 보듯 폭로전.흠집내기에 국민은 피곤해 한다. 남은 임기 중 현 정권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선 야당도 일정부분 협력해야 한다.야당이 대안을 곁들이지 않고 대정부 공세에 주력했다는 평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면모를 李총재는 이번에 보여줘야 한다.

이번 회동은 DJP 결별로 정치환경이 바뀐 뒤 열리는 만큼 두 지도자의 상생(相生)정치의 의지와 그릇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 소중한 기회에 국민의 기대에 맞춰 성과를 내놓는 것이 두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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