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세기의 첫번째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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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영 연합군의 공습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마침내 시작됐다. 6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미 테러 대참사 이후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D-데이 선택의 문제였을 뿐 기정사실로 간주돼 왔다. 테러 발생 후 26일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공격 태세를 갖추고 국제사회의 지지 여론을 규합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착실한 준비를 갖춰 공격명령을 내렸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지휘하는 알 카에다 조직을 보호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에 최후통첩을 했고, 빈 라덴의 테러 연루 증거를 우방들에 제시하는 등 명분 축적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전선도 없고, 전방과 후방도 없는 회색 전쟁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21세기의 막이 올랐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전쟁은 치명적 기습 테러를 당한 미국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테러는 그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만행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정당성을 지닌다.

공격 개시 직후 부시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밝혔듯이 이번 전쟁에서 적은 아프간 국민이 아니라 테러 네트워크와 이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이다. 미국은 목표물을 정교하게 조준한 핀포인팅 공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전쟁이 몰고올 비극적 후과에 대해 인도주의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공격 개시와 동시에 식량과 의약품을 아프간 주민에게 투하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난민에 대해서도 인도적 배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완벽하게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 어떤 정의로 치장한 전쟁도 장기화하면 추악해지게 마련이다. 미국은 이라크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공격으로 단기간에 전쟁을 마무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도덕적 책무다.

자칫 전쟁이 이슬람권 전체로 확대돼 문명 충돌의 양상을 띠게 되는 사태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 기회에 중동정책 전반을 재검토함으로써 아랍권 전체를 끌어안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번 전쟁의 여파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이 아직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요청이 올 경우 이미 정부가 밝힌 대로 국회 동의를 거쳐 비전투병력을 중심으로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빈 라덴이 미국을 지원하는 모든 나라에 대한 '성전(聖戰)'을 다짐한 만큼 국내 안전대책에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내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철저한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전쟁의 양상에 따라 경제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처별로 대책반을 가동하고 민간과 머리를 맞대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중동지역으로 불똥이 튈 경우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에너지 비상수급 대책 마련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앞을 내다보는 슬기로운 대처만이 '21세기 첫 전쟁'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첩경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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