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09>물어보면 곤란한 주말골퍼 핸디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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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6면

“핸디캡이 얼마나 되세요?”
주말 골퍼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대답하기가 무척 곤혹스럽다. ‘핸디캡’이 얼마냐고 묻는 건 곧 평균 타수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묻는 건데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라운드 때마다 스코어의 진폭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주 A골프장에서 82타를 기록하고도 이번 주 B골프장에선 96타를 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스코어가 14타나 차이가 나는 셈인데 이런 이유 때문에 핸디캡을 얼마라고 해야 할지 선뜻 대답이 안 나온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스코어가 들쭉날쭉한 걸까. 단순히 주말 골퍼의 당일 컨디션 차이 때문일까. 필자의 에피소드를 보자.

최근 일본 도쿄 인근의 한 골프장. 날씨는 쾌청하고 페어웨이는 디벗 자국 한 점 없이 깨끗했다. 필자는 서울에서 간 다른 일행들과 함께 라운드에 나섰다. 동반자들이 다들 초면이라 서먹서먹했지만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런데 클럽하우스에서 라운드를 준비하던 도중 누군가 필자에게 바로 그 질문을 던졌다.
“핸디캡이 얼마나 되세요?”

필자는 다른 주말 골퍼들이 그렇듯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핸디캡? 얼마 전 82타를 쳤고, 그 전주엔 86타를 쳤으니 겸손하게(?) 핸디캡이 14개 정도라고 말하면 될까. 바람 부는 날 제주도에서 90대 타수를 기록한 건 잊어버리고 싶었다. 우물우물하는 사이 동반자들은 필자의 구력을 감안해 실력이 싱글 플레이어 수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약간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올해 베스트 스코어를 생각하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날씨도 좋은 데다 코스 컨디션도 최상이어서 ‘7자’를 그려야겠다는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번 홀 티잉 그라운드. 나이가 지긋한 캐디는 우리 일행에게 오렌지 티를 사용하길 권했다. 화이트 티잉 그라운드는 시니어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란 설명과 함께. 그래서 우리 일행은 오렌지색 티잉 그라운드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필자는 1번 홀부터 더블보기를 했다. 2번 홀은 간신히 보기. 3번 홀은 파3홀인데 길이가 200야드 가까이 됐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코어 카드를 살펴보니 코스 전장이 6600야드를 넘었다. 코스 전장이 웬만한 블루 티잉 그라운드 수준이었다.

그래도 동반자들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었다. 이들은 티샷 거리가 25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자들이었다. 필자는 그날 허리가 부러져라 드라이브샷을 했다. 그래도 세컨드샷을 앞두곤 항상 롱아이언이나 페어웨이 우드를 잡아야 했다. 당연히 그린에 공을 올리기가 힘들었다. 쇼트게임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이 골프장의 그린은 유리알 그린처럼 빨랐다. 칩샷을 잘했다고 생각해도 반대편으로 쭉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당연히 파 세이브를 하기조차 힘겨웠다. 필자는 그날 호되게 혼이 났다. 그날의 스코어는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런 경우가 필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골프 실력이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라고 말하는 주말 골퍼들이 꽤 많다. 그런데 코스 길이에 따라 스코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필드에서도 겸손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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