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교육 도구 싫다, 교과서에서 내 글 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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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내 한 유명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이 동의 절차도 없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다. 교과서에 수록되는 문학작품이 결국은 입시교육의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유명 소설가인 김영하(42·사진)씨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단문 게시판)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씨는 “교과서는 원문을 그대로 싣는 법이 거의 없어 작가가 추구했던 내적 완결성은 온데간데없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내 교육 현실에서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난도질을 당하고 문제집의 지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결국 입시 교육의 한 도구가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문학은 독자가 원문을 자유롭게 읽을 때 각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변화일 뿐 시험 점수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김씨가 이 같은 주장을 펴게 된 것은 지난달 27일 한 출판사로부터 그가 쓴 산문인 『상상은 짬봉이다』의 일부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검정교과서에 실렸다는 통보를 받은 게 계기였다. 작품 수록을 동의한 적이 없었던 김씨는 저작권법을 뒤져봤다. 법 25조에는 학교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교과용 도서에는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 작품을 수록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단 수록 시에는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는 30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만큼 일부 작가의 거부 의사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법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저작권법 개정 노력을 하겠다”며 “그게 어렵다면 헌법소원을 통해 저작권법 25조의 위헌 여부를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김태훈 교과서기획과장은 “지금까지 작가가 교과서 수록 거부를 공식으로 밝혀온 적은 없었다”며 “작가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교과서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유미 기자

◆김영하=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기발한 발상과 현실에 대한 풍자로 ‘신세대 스타작가’로 주목받았다. 장편소설 『검은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등을 썼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도 수상했다.

▶ 소설가 김영하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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