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25가 '실패한 통일 시도' 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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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군의 날 치사에서 우리 역사상 있었던 세번의 무력통일 시도 중 두번은 성공했지만 "세번째인 6.25사변은 성공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6.25 남침에 대한 金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국민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의 인식은 6.25에 대한 몰가치적.중립적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와 고려의 통일이 이루어진 시대적 정황과도 맞지 않는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의 정통성을 수호해야 할 국가원수인 그가 제3자적인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객관화한 듯한 발언을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매달 한차례씩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설파해 왔다는 것은 여간 문제가 아니다.

물론 金대통령의 진의는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보조적 설명의 수단으로 '6.25=실패한 무력통일 시도론' 을 제기해 왔다는 데 있다. 이번 치사에서도 그는 "이제 네번째의 통일 시도는 결코 무력으로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 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을 도구적 수사로 차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끌어다 댈 아무리 좋은 도구라 한들 그 개념의 사용에는 시대적 한계성이 깊이 고려돼야 한다. 하물며 국가원수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6.25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현재성을 갖고 있다.

국가원수가 그 말할 수 없는 재앙을 우리에게 남긴 피침(被侵)의 역사를 남의 나라 일처럼 객관화할 수는 도저히 없다. 金대통령은 지난 8월 27일 3당 지도부 및 국회의원 초청 만찬에서 "6.25 당시 남도 압록강까지 갔고, 북도 낙동강까지 왔지만 결국은 물러나서 제 자리로 돌아섰다" 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누가 침략의 주체인지를 모르게 한다. '6.25=실패한 무력통일 시도' 라는 인식은 북한의 입장이지, 우리의 입장일 수는 없다. 신라와 고려의 통일은 왕조들의 쇠퇴기에 정립(鼎立)한 왕조들간의 투쟁에 의한 산물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결코 비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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